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란 Mar 01. 2024

글의 용도

Y 언니를 영원히 기억하며

눈이 떠졌다. 밖은 여전히 깜깜했고 핸드폰을 보니 새벽 2시를 지나고 있었다. 아직 3시간이 남았다. 종일 힘들 수도 있으니 좀 더 자두자 싶은데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이게 꿈이라면, 그래서 이 꿈을 깨고 한 달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만사 제쳐두고 언니를 데리고 병원을 갈 텐데. 당장 회사 휴가 쓰고 빨리 병원부터 가서 검사받아보자고, 내가 꿈을 꿨었다고, 동생 소원 들어주는 셈 치고 오늘은 병원 가자고 떼를 쓸 텐데.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지만 꿈은 깨질 않았다. 그래도 잠을 좀 자야지 싶어 뒤척이다 5시 알람소리에 다시 잠을 깼다.


2월 아침 여섯 시는 여전히 캄캄했다. 커피를 홀짝이며 밤 같은 도시를 나오니 쌀쌀한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경을 고쳐 쓰고 속으로 성호를 그었다. 오늘 하루도 안전하도록 지켜주세요. 그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어떤 물체가 도로에 보였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분이었는데, 새벽 부지런히 박스 종이나 고철 같은 것들을 모으시는 분 같았다. 급히 핸들을 꺾어 그분을 피했다. 옆 차선에 아무도 없어서, 속도내기 전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분을 백미러로 한번 더 확인하고 별일 없는 듯 보여 다시 가던 길을 갔다.


나는 오늘 수원으로 간다. 그저께 다녀온 성당으로 다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엄마는 대중교통을 타면 어떻겠느냐 했지만, 가다가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럼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오늘은 Y언니를 떠나보내는 날이다. 아침에 있을 발인을 지켜보고 장례미사를 참석할 예정이다. 그러니 늦을 수는 없었다. 


중간에 J언니를 만나 동행했다. 그저께 왕복 4시간을 혼자 운전해서 가는데,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뛰고 숨이 턱턱 막혀서 혼자 가는 길이 무서웠다. J언니와 함께 간다면 덜 무섭지 않을까. 이 지독히 이해되지 않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둘이 같이 겪어낸다면 그래도 좀 덜 힘들지 않을까. 나는 언니가 옆자리에 타는 순간 비로소 숨을 편안히 쉴 수 있었다. 


절차는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글로벌 토픽 같은 방송에서 나오는 놀라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니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얀 천이 덮인 관에 누워있었고, 사람들의 흐느낌 속에 장례미사의 음악과 기도소리 사이에 침묵을 지켰다. 멀지 않은 곳의 화장터에 도착한 우리는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난방을 하지 않는 건물 때문인지 차가워진 손발을 느끼긴 했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그냥 벽에 기대 서있거나 의자에 앉아 훌쩍이다 형부와 아이, 어머니 아버지의 안색을 살피곤 했다. Y언니와 절친인 J언니는 전광판에 이름이 뜨는지를 지켜보기도 하고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기도 했다. 게임을 하지 않으면 언니는 눈이 벌게지고 코를 심하게 훌쩍였고, 한숨을 내쉬었다.


불교신자인 J언니는 윤회를 믿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힘들게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 말이 떠올랐다. '원래 살아있는 게 특이하고 신기한 거다. 우주의 대부분은 모두 죽어있다. 그러니 죽음은 그냥 좀 더 자연스러운 단계로 가는 거다'라는 말에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진 적이 있었다. 나는 언니가 새가 되고 싶다는 말에 "그렇다면 나는 커다란 돌이 되고 싶다"라고 했다. 그냥 들판이어도 좋고, 물속이어도 좋고, 풍경 좋은 산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냥 변함없이 시대의 흐름과 세월의 풍파를 흘려보낼 수 있는 큰 바위면 좋을 것 같았다. 


한 시간 반정도 시간이 흐르고, 언니는 작은 함에 담겨 나왔다. 나는 궁금했지만 수골 하는 곳을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껏 버텨온 두 다리의 힘이 모조리 풀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언니의 유골함을 품에 안은 형부는 울음을 터트리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윽윽 거리며 내 앞을 지나 운구차로 향했다. 그리고 언니의 유골함은 반듯하고 깨끗하게 잘 지어진 새 건물 2층, 아이나 어른 모두 손내밀면 닿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안치되었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형태로, 자기 이름을 새긴 하얀 도자기안에 갇힌 채로. 나는 그런 언니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나중에 현상한 사진을 보면 아마도 나는 그 시간으로 끌려가 다시 그곳에서 얼어붙은 채로 이해할 수 없는 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겠지. 그래도 좋았다. 작년 말 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찍은 사진처럼 그렇게 지금의 모습조차 영원히 박제하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 이 슬픔도 무뎌지고 스러져가 사진을 볼 때만 추억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을 나는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지금의 감정을, 언니를 기억하는 내 아픔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이 글을 남긴다. 매일매일의 치열함에 치여 지금을 잊는다 해도, 이 글의 제목이라도 다시 보는 날, 이 글을 다시 읽는 시간에는, 적어도 언니만을 위한 내 마음을 다시 꺼내보려고 한다. "많이 힘들었던 Y가 이제는 편안해졌을 거니 그거만으로도 나는 다행이야."라고 했던 J언니의 말을 계속 되새겨본다. 언니가 보고 싶어 SNS를 열어보면 그 안에는 예쁘고 행복했고 이 삶이 영원할 것처럼 믿고 행동했던 Y언니가 보여 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이 더 나은 걸 거야라고 애써 나를 위로하며 목구멍의 통증을 지그시 누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 내리는 아침의 기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