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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Mar 15. 2024

일상 복귀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쓰기는 나의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황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었고, 설사 그렇게 편안하지 않더라도 생활을 지탱해 주는 것 같은 리추얼이었다. 오랜 직장생활에 길들여진 나에게 무엇인가를 '한다'라는 것은 무척 중요했고, '하는 것으로 구성된 루틴'은 생활을 구성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발행된 브런치 글들은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낸 증거였고, 글을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나를 도닥여주었다. 그러나 그 글을 한동안 쓸 수 없었다. 


물론 노트북을 열고 끄적이다 저장만 한 글도 있고, 메모를 해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글을 쓰고 발행하고, 발행한 글에서 이상한 내용을 발견하여 멋쩍게 수정하거나, 가끔은 혼자 도취되어 읽고 또 읽는 그런 행동들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면 나는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고, Y언니를 잃은 슬픔을 다 털어낸 게 될 것이고, 그건 너무 아름다운 시기에 떠난 언니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언니가 살지 못한 오늘을 내가 너무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고, 예전과 별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더라도, 글을 쓰는 것만은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늘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술잔에 술이 넘치듯 흘러나와 써 내려가는 글은 마치 Y언니를 잊어버린 증거가 되어 나를 책망할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더 미안해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매일 울고 분노하고 무기력했던 것은 아니었다. 글만 못썼지 일상을 찾아가고 있었고, 나는 잘 웃었고, 슬픔을 조금씩 잊어버리는 듯했다. 그렇게 이번주를 잘 지내고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기분 나쁜 몸살이 찾아왔고, 온몸은 부었고, 속이 울렁거리고, 어깨와 목이 무겁고 두통이 생겼다. 온몸이 무거워지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자 나는 진통제를 한 알 먹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리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잠시 꿈을 꾸었다. 


"정은아 우리 저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햇빛에 반사된 듯 환한 Y언니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언니는 이번에도 눈이 반달이 되도록 웃으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이동했는데... 꿈이었다. 그 뒤로도 무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저 기억나는 건 언니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는 것일 뿐.


꿈은 깼으나 여전히 몸은 무거웠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뒤척이니 J언니의 메시지가 왔다. 주말에 Y언니의 다른 친구와 함께 아이를 만나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다고 했다. 나는 잘 지내냐는 안부도 물어봐주었다. 나는 환하게 빛나던 Y언니의 얼굴이 생각나 꿈 이야기를 잠시 했다. 언니가 꿈 이야기를 듣고 부러웠을 수도 혹은 더 우울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상관없이 나는 잠시 회상해 보고 좋았던 기억을 곱씹었다. Y언니가 이제는 편한가 보다. 좋은 곳에 갔나 보다. 내 멋대로 상상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지는 해를 보며 스트레칭을 하고 요가매트를 정리하고 나니, 친구 H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어디야?" 늘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친구의 습관이 정겹다 생각하며 집이라고 했더니, 레스토랑을 예약했는데 같이 가기로 한 다른 친구가 일이 있어 펑크를 냈다고, 예약금 날아가게 생겼으니 나오라는 이야기였다. 낮에는 몸이 무거워 말 한마디 하기 싫더니, 스트레칭덕인지 낮잠덕인지, 무슨 바람이 불어 나는 흔쾌히 나가겠다 답했다. 대충 입술에 립밤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며 자다 깬 흔적을 급히 지웠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한식 요리를 코스로 먹고 전통주도 페어링 했다. 약간 알딸딸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친구에게 낮에 꾼 꿈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그래서 그 언니가 내 친구 못 나오게 했나 보다~"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이 재미있고 고마와서 웃었다. 비록 언니는 이제 없지만, 아직 애도를 해도 모자랄 기간이지만, 친구 말대로 언니덕에 기분전환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웃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내 마음대로의 생각이지만,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언니가 채근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행히 나는 그 핑계를 대며 다시 글을 쓸 용기를 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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