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언제였던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이라는 책에서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단편을 읽었었다. 미래를 기억한다는 신기한 이야기에 감탄했었지만, 이내 이 글을 읽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홍진훤작가의 사진과 김연수작가의 단편이 실린 사진소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를 접하면서 이 책을 사게 되었는데, 첫 장을 읽으면서 알았다. 이 단편을 예전에 봤었다는 것을. 그때와 달라진 것은 이번엔 나머지 글들을 다 같이 읽었다는 것. 단편들은 서로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였지만, 시간, 기억, 상처, 바람, 새로운 시작이라는 공통의 언어들이 글 사이로 흐르고 있었다. 학창 시절 좋아하던 가수의 앨범을 타이틀곡만 들을게 아니라 1번 트랙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들어야 그 아티스트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이미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 당연하게 김연수 작가의 팬이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기억이라는 것은 과거의 어떤 시간이나 장소, 사건의 일부가 내 머릿속에 남는 자연스럽고 동시에 의지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수동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기억은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홍진훤 작가의 사진을 함께 보며 그 생각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 책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제주도에 도착했다면 갔었을 수학여행을 코스를 혼자 가며 아무도 없는 적막한 그곳을 담은 사진집이었다. 무심하게도 시간은 십 년이나 지났고 그 시간보다 더 빨리 우리 머릿속에서 그 사건이 희미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가 기울어지고 점점 가라앉는 것을 뉴스에서 실시간으로 보면서 참담해하고 괴로워했던 감정들은 많이 무뎌졌지만, 절대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약속은 계속 붙들고 있었어야 했었다. 그땐 영원히 지킬 수 있었을 것 같았던 감정들이 어느새 지워지고 뒤로 밀려나 있었다. 책을 보면서 겨우 떠올린 그때의 약속에 나는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나는 기억하지 못했고, 그래서 비교적 평평한 십 년을 잘 지냈고, 비겁했다.
사진소설을 본 그날 밤 새벽 3시가 되어도 잠들지 못해 계속 뒤척였다. 그런 마음이지만 단편집을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곳에서 위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5년인가 6년 전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일상이 지치고 도망가고 싶었을 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으며 펑펑 울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같은 위로를 나는 이 단편들에게서 발견했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를 잃었고 상처받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과거 혹은 미래의 기억 한 톨에 기대어 다른 선택을 했고 불어오는 바람에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발견하고 있었다. 김연수 작가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매 단편마다 심어두었다. 그러기 위해 미래를 기억하고 남길 선택을 기억하고 사람을 기억하고 노래를 통해 살고 싶다는 내 생각을 기억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래를 기억한다는 말이 안 되는 그 말은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긍정하게 되었다.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보는 토정비결이나 타로점의 예언들은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라 신기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미래인 오늘 하루는 매우 평범했고, 그때 나온 이야기들도 사실 별것 없었다. 평범하고 평안한 이 일상을 생각한다면, 과거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쉬이 지나갈 수 있으리라. 결국 말도 안 되는 그 말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는 평범하고도 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단편 속에서 그 메시지는 마크 로스코의 벽화에서 발견한 빛처럼 심장을 울렸다.
수개월을 걸려 쓰고 다시 수개월을 망설이며 고친 원고를 지난달부터 투고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답변의 메일은 아직 한통도 받지 못했다.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난 책을 낼 거라고 큰소리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능성은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감은 커졌었다. 새로운 편지가 없는 메일함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고, 최근 일주일을 앓아누우면서 무력한 내 모습에 대한 실망은 더욱 커졌었다. 글 쓰는 게 너무 좋다고 했지만 '내 주제에 무슨 글이야, 재취업이나 할걸.' 같은 후회가 하루에도 수차례 들었고, 구멍이 뚫린듯한 헛헛한 마음을 채우지 못해 어느 하나에도 몰입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가족들과 친구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잘 진행되고 있는 척, 억지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러다 이 문장에서 나는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나는 미안하고 부끄럽고 좌절했고 그러다 위안받고 다시 믿게 되었다. 이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희망이라는 뻔하지만 그리웠던 단어를 다시 찾은 것은 글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또다시 무력해지고 우울해질지라도 글과 함께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또 글에 의지하며 바람이 불어와주기를 기도했다.
<100자 평>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오늘이 힘든 사람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감동과 함께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