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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Sep 22. 2024

엄마의 짝짝이 젓가락

엄마, 그 젓가락 쓰지 마오

추석 때 만들어 먹고 남은 나물에 밥을 넣고 탕국을 두어 스푼 넣고 고추장을 조금 넣어 쓱쓱 비볐다. 오늘 저녁은 명절 음식들 모두 털어먹고 정리하기로 했기 때문에 남은 새우전과 동그랑땡, 전복조림, 생선도 데웠다. 김치와 오이장아찌까지 꺼내서 먹으니 며칠 지난 반찬들인데도 꿀맛이었다. 이러니 굶어서 빼는 다이어트는 절대 힘들다. 비빔밥을 만들고 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연신 "아유~ 그거 뭐 비벼먹을게 된다고 맛이나 있으려나 모르겠네."라고 했지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 맛있었다. 한동안 명절 음식 못 먹을 거니 마지막 남은 나물을 대충 먹어 치우긴 싫었고, 명절 당일처럼 차려 먹으니 한결 좋았다. 설 떡국, 추석 토란국보다 나물비빔밥이 최고니까.


그러다 반찬을 집어먹는 엄마 젓가락에 눈이 멈추었다. 나무로 된 젓가락인데 두 개가 길이가 좀 다른 거다. 

"엄마, 젓가락이 왜 그래? 이거 한쪽이 부러진 거네?"

"아닌데, 이거 새건대, 그냥 모양이 이런 거야."

"그냥 모양이 이런 게 어딨어, 이거 봐바 요거 주름 있는 거 이 아랫부분이 잘린 거네."

"새건대, 원래 이 모양인 거 같은데."

"엄마는 손님 오면 이 젓가락 손님 용으로 내놓을 거야?"

"아니."

"그럼 엄마도 쓰지 마. 나는 엄마가 엄마 자신을 손님처럼 대하면 좋겠어. 엄마 그 젓가락 나한테도 안 줄 거면서 왜 엄마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딴소리를 하고 반찬 그릇 자리를 옮기며 다른 반찬을 권했다. 늘 이렇다. 딸이나 아들한테 주기는 싫고, 그렇다고 버리긴 아까운 것들은 엄마가 해치운다. 짝이 다른 젓가락, 애매하게 남은 반찬, 유행이 지나 흥미를 잃은 딸 운동화, 작아져버린 아들 티셔츠 같은 것들. 그런 엄마였기에 집도 사고 지금처럼 살림도 꾸려가고 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걸 안다. 젓갈이나 파스타 소스, 고추장 같은 것들을 먹고 남은 유리병은 잘 씻어 소독해서 다른 반찬 저장통으로 쓰고, 시장 보고 생긴 비닐은 쓰레기 처리할 때 사용한다. 빵을 사면 생기는 빵끈을 모아두는 통이 따로 있고, 안 입는 러닝셔츠는 잘라서 행주로 사용한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일이었다. 포장이사를 도와주시는 분 중 아주머니 한 분이 주방 용품들을 정리하다가 엄마가 깨끗하게 씻어 모아둔 유리병들을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거였다. "사모님, 이런 거 왜 모아요. 챙길만한 게 하나도 없네. 다 버릴 거 아니에요?"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그거 다 싸주세요. 버리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이사가 끝난 후에도 한참을 엄마는 "이게 그렇게 이상한가? 다 버릴 물건인가? 그래 뭐 버릴 것들이긴 하지."라고 나한테 이야기했다가 혼자 중얼거렸다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했다가 왠지 슬픈 얼굴이 되었다가 했다. 나는 그 슬픈 얼굴을 보는 게 슬퍼져서 "그게 뭐 어때서. 환경을 위해서도 재활용해야지. 그리고 유리병 사려면 다 돈인야."라고 했다가, 한편으론 화가 나서 "너무 구질구질한 것도 사실이지, 좀 갖다 버리자."라고 했다가, 갈팡질팡하며 엄마 속을 더 긁어놨었다.


그러면서 어느새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주방 서랍 한 구석에는 작은 통에 빵끈과 고무줄을 모아뒀고, 스파게티 소스가 담겨있던 유리병에는 마리네이드 토마토나 양배추 라페, 삶은 병아리콩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다. 와인을 담았던 쇼핑백에는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인 비닐들이 돌돌 말려 있고, 작은 비누 조각들을 모아 비누망에 두고 사라질 때까지 쓴다. 


하지만 엄마 젓가락만 짝짝이인 건 싫다. 엄마 실내복 바지 무릎이 나온 것도 싫고, 늘 매고 다니던 크로스백의 꽃무늬가 너무 도드라져 보인다고 마커로 칠하고 다시 들고 다니는 것도 싫다. 지독히도 그런 게 보기 싫은 건 아마 쪼글쪼글 주름져버린 손 겉가죽 때문일 거다. 예쁜 눈은 처지고 하얀 피부에는 검은 점들이 생겨 버렸다. 뱃살은 쳐지고 종아리 살은 물렁물렁해지고 무릎 사이가 점점 벌어졌다. 어린 시절 어미 거미를 먹고 자라는 우글거리는 새끼 거미를 다큐멘터리에서 보고 나쁜 것들이라며 미워했는데 사실은 그게 나였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그러니 젓가락까지 짝짝이이면 안 되는 거다. 


설거지 통에서 그 젓가락을 발견했다. 식사하면서는 '다음에 또 보이면 버린다.'라고 했지만 그냥 다른 수저들과 함께 거품 내어 씻었다. 서랍 속 빵끈과 찬장 속 빈 유리병처럼 이 젓가락도 쉬이 버리지 못할 거 잘 안다. 내 잔소리는 저녁 8시 뉴스보다 더 귀에 안 들어갈 거고 멀쩡한 물건을 버린다고 속상해할 거다. 그러니 나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또 졌다. 하지만 다음번 식사할 때 그 젓가락이 또 보인다면 그땐 내가 쓸 테다. 그게 바로 거울 치료지. 엄마는 생각지도 않은데 나는 설거지 물소리를 들으며 혼자 시답잖은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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