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하루
삼십 분째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은 포토에세이를 발행하기로 약속한 날이니까요. 원래라면 어제 사진 선택과 글쓰기를 완료하고 발행 예약을 해두었어야 했는데요,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강행했던 여행이 어제 끝나 오늘까지도 글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마무리는커녕 시작도 못했네요. 고민을 하다 오늘은 제가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편안하게 그냥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오늘 하늘이 어땠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카메라를 하나 가지고 외출을 시작하다 보니 그제야 하늘도 보고 길을 지나가는 행인도 보고 가로수와 이름 모를 꽃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지키는 사장님들과 물건을 나르는 배달원, 바쁘게 어딘가를 가고 있는 사람들, 일상을 지키느라 부지런하고 성실한 모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이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사소한 것들을 보는 여유는 진짜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거듭되는 연습으로 만들어지는 면이 더 큽니다. 손에 든 핸드폰을 들고 SNS를 확인하거나, 지도를 한번 들여다보거나, 포털의 뉴스를 보는 게 지나치는 것들에 흥미를 느끼는 것보다 훨씬 쉬우니까요. 그래서 핸드폰을 호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카메라를 두 손으로 들고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나뭇잎에 숨어있는 햇빛을 찍기도 하고 어떤 날은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아이 손을 잡은 엄마를 찍기도 합니다. 오래된 도장가게에서 돋보기를 끼고 등을 구부려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 있는 장인의 옆모습을 찍기도 하고, 문 닫은 가게 앞에 줄지어 놓여있는 술병을 찍기도 합니다.
가끔 피사체가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저기요 여기 좀 봐주세요~ 라구요. 홀로 떨어져 나온 안전삼각뿔이나 나란히 서있는 커피잔은 가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오글오글 모여있는 사람들, 그러나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공항에서 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보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리 없이 속삭이는 것 같아 재미있습니다. 천진난만한 미소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여주는 아이들을 만나면 곧 사라질 보석 같은 찰나를 잡고자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곤 합니다. 그 사람들은 그 아이는 저를 부른 적 없다고 하겠죠.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기운은 색깔은 깜깜한 밤에 조용히 흔들리는 촛불처럼 저를 부르곤 합니다. 여보세요. 제가 얼마나 많은 재미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나요?
그런 상상으로 찍은 사진들을 늘여다 두고 또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가끔은 이게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때요. 상상은 자유고 생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손을 벗어난 연어 같은 존재니까요. 흩어진 생각과 텍스트들을 손으로 슥슥 모아 봅니다. 어느 정도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싶으면, 연어처럼 팔딱거리던 것들이 제가 만들어둔 연못에서 조용히 맴돌고 있는 걸 확인하면 브런치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전부터 골라두었던 사진들을 글 뒤에 붙여 넣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라는 글은 생겨나면서부터 주장하는 글이 되고 맙니다. 그건 감정이든 정보든 주장이든 이야기든 우리가 단번에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내 생각은 이래요라고 드러내놓는 순간 그건 다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습니다. 내가 뭐라고 주장을 하지?라는 고민을 하다가, 여기저기 많은 것들을 주장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분들을 보며 이 정도는 그리 강성한 주장은 아니잖아?라고 자기 위안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기도 합니다. 물론 제 마음속과 머릿속에는 나름의 결론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요, 글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분위기도 있습니다. 꽉 닫힌 해피엔딩의 드라마의 뒷맛은 깔끔하지만, 마지막 회가 끝나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게 되는 서운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냥 그렇게 느꼈다는 것에서 글을 끝내기도 합니다. 우리 이렇게 합시다! 라든가 이건 이렇습니다!라는 꽉 닫힌 글은 쓰기도 읽기도 쉽지만,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난 뒤, 생각이 바뀐 후 발견하게 되면, 이미 그때와는 달라진 나와의 간극으로 낯설어질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제 글에서 무언가를 강요받는데서 오는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글은 참 어렵습니다. 제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고 싶은데 강요하기는 싫은 이 묘한 마음은 아슬아슬하게 줄 위를 걷는 사람의 평형봉처럼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거의 완성된 글에 조금 어설프지만 저만의 사유, 통찰 같은 것을 한 방울 추가로 떨어뜨립니다. 제가 쓰고자 하는 것이 일기가 아니라 에세이이니까요. 그 한 방울이 만들어내는 잔잔한 파장이 사진과 글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도 추가합니다. 그렇게 짧지만 짧지 않은 포토에세이가 완성됩니다.
그러나 오늘은 연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기획에 맞는 포토에세이를 써내지 못했습니다.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죠. 그래도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보다, 저는 이래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글 쓰는 사람들이니, 이런 제 마음도 이해해 주시는 분이 계시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쌀쌀한 밤공기를 가르는 자동차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옵니다. 이 밤에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불 켜진 집과 불 꺼진 집, 길 위와 건물 안에서, 차 안에서 산 위에서 생겨나고 조용히 사그라들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야기들을 체로 잘 건져서 사진으로 글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겨납니다. 치익하고 성냥에 불이 붙는 그 순간처럼 말이죠. 그 작은 불빛을 가슴에 잘 품고 모두 따뜻한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음 월요일부터는 최근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