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좋아했었어! 이젠 아니지만

2장. 알고 보니 자유를 얻은 것이었어요 (1편)

by 니나

작년 11월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그 일이 있고 나는 위험인물이었다. 회사를 퇴사하기로 결심이 서기전까지 나는 그 메일을 받기 전과 마찬가지로 회사를 출근했고, 광고주들과 미팅을 진행했고, 회사사람들과 점심, 저녁 식사와 커피를 함께 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중요한 정보가 나에게 새어 들어갈까 봐 조심하는 상황이었고 호시탐탐 나는 감시의 대상이었었다. 어지간히도 무딘 내가 그걸 알아챈 건, 평소처럼 회사 분과 함께 했던 점심 그 후의 한 통의 전화 덕분이었다.

"로란님, 제가 어제 점심 먹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걸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네? 무슨 말이죠?"

"우리가 점심 먹으러 간 걸 누가 본 것 같은데, 그래서 점심시간에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누가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야기한 적 없던 걸로 해주세요. 윗선에서 그런 이야기를 로란님에게 하지 말라고 하시네요."

"아 네네 당연하죠. 저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전화도 한 적 없는 겁니다."


회사에서 나는 나가야 할 사람이었고, 리더십 그룹은 내가 나간 후의 여러 가지 조직개편과 변화에 대한 계획을 준비하되 함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출근하지 않고 휴가처럼 쉬거나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거나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으면 그들도 마음 편했을 텐데, 나는 사무실의 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게 그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주요 정보가 나에게 새어나갈까 봐 전전긍긍했고 내가 누굴 만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궁금해했다. 내가 출근하면 내 건너편 앞에 앉은 대표는 슬그머니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 다른 곳으로 업무 장소를 옮겼었다. 그래서 내가 노트북 화면에서 주요 정보들을 보게 될까 봐 걱정하나보다 싶었다. 그러나 내가 어디서 누구와 점심을 먹었는지를 알고 입단속을 시킨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고 그나마 조금 있던 회사에 대한 정이 싹 사라졌다. 게다가 우스운 사실은 나는 그들이 비밀로 하고 싶었던 그 정보를 한참 전에 다른 경로로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괜히 나라는 사람이 잘 지내는지 염려되어 같이 밥 먹자고 손 내밀었던 그 사람에게 미안했다. 이왕 먹는 점심 우리 맛있는 거 먹자고 회사 도시락을 마다하고 다른 식당으로 이동한 게 미안했다. 그래서 불안해진 리더십이 그에게 입단속을 시켰고 그 과정에서 불안했을 그가 안쓰러웠다. 이 일을 계기로 그와 내가 멀어질까 두려웠다. 그가 보여준 친절이 따뜻하고 포근해서 회사를 떠나더라도 그 인연을 계속 가지고 있고 싶었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는 회사에 대한 마음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5년 가까이 몸담았던 그 회사는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다. 갑질하며 담당자를 바꿔달라 요구하는 광고주에게는 우리 서비스가 맞지 않다면 받지 말라고 그 요구를 거절한 곳이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솔루션이지만 데이터 너머 사람을 먼저 보자고 했다.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 클럽활동 들을 독려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가치를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리더십을 존경했다. 그런데 막상 가족처럼 친구처럼 함께 했던 직원을 내보낼 때는 사람 너머 절차와 정보, 돈을 먼저 보고 있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정리해고를 한다고 했지만, 나를 내보내려고 했던 그 연말, 회사는 대대적인 TV 광고를 시리즈로 내보내고 있었고 정리해고가 성공적으로 완료된 후 주가는 크게 올랐다. 내가 알고 있던 회사가 더 이상 아니었다. 내 개인적인 비전을 일치시킬 정도로 좋아했던 회사의 가치들은 언제 이곳에 있었냐는 듯 빠르게 삭아 없어지고 있었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외부 미팅에서 오프닝으로 자주 쓰던 '사람과 커뮤니티의 가치를 우선한다'는 회사 소개 문구는 이제 거짓말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멍청하게 믿고 회사 매출을 위해 앞장선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회사는 이익집단이다. 그러나 이익보다는 그 너머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던 이 회사는 멋있는 표어와 미사여구로 그 사실을 꼭꼭 숨겼고 나는 그 말에 깜빡 속아 회사와 사랑에 빠졌었다. 그리고 그 사랑과 믿음은 2022년 연말 깨졌다.


아마 앞으로는 어떤 회사에 가더라도 과거 내가 했던 실수처럼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무언가를 기대하지는 않게 될 것 같다. 정말 슬픈 일이지. 회사가 아무리 좋은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고 직원들을 설득하더라도 쉬이 당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라도 회사의 민낯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아니었다면 나는 계속 속아서 회사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를 대신한 거짓말쟁이가 되었을 것이며, 다른 곳으로 이직하더라도 회사의 사탕발림에 또 속아 홀라당 마음을 다 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은 이제 나를 향하려고 한다. 회사 대신 나에게 더 큰 관심을 보내고 회사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해 이야기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나를 돌아보고 더 알아갈 수 있게 기회를 준 회사가 고마웠다. 똥차인지 모르고 좋아서 실실거리던 나를 너무 늦지 않게 뻥 차준 그 옛날 남자친구가 생각났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질척거리지 않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