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척거리지 않아야 하는데

2장. 알고 보니 자유를 얻은 것이었어요 (3편)

by 니나

어린아이는 호기심의 상대에 겁 없이 손을 내밀고, 작은 장난감 하나에도 친구를 만든다. 그러나 더 많이 세상을 배우고 가진 것이 많아진 어른들은 호기심 같은 순수한 마음을 따르는 것을 잊어버리고 가짜 웃음과 가짜 인사들을 건넨다. 진짜라고 착각하고 다가갔다가 바보가 되기도 하고, 그 후엔 어른스러워지고자 나를 단단한 껍데기 안으로 밀어 넣고 보호하려고 한다.


얼마 전 미술관에 갔을 때 일이었다. 관람을 다 끝내고 피곤한 다리를 스트레칭하며,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를 입에 물고 친구와 벤치에 앉아있었다. 이때 우리 앞을 지나가던 사람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그렇다고 진짜 부르면 어떡해?”

“그럼 어쩌라고.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러다 진짜 온다고 하면 어쩔 건데. 무섭게시리”

예의상 누군가를 모임에 부르게 된 모양인데, 그걸 들은 친구가 정말 그 사람이 여기 오면 어쩌냐고 호통을 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무서울 정도로 만나기 싫은 사람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왜 진심에도 없는 인사와 초대를 하는 걸까. 또 초대받은 사람은 이 사람이 예의상 한 건지 정말 원해서 초대한 건지 웃는 얼굴 너머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심해야 하는 걸까. 혹여 진심인 줄 알고 갔다가, 초대받았으되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 되었을 때 그 어색한 공기와 불쾌한 소름은 누구 탓을 해야 할까.


회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술이 조금 오른 누군가가 편해진 마음에 "회사에서 자주 말 걸고 잘 지내다 보면 내가 진짜 자기랑 친한 줄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고."라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가 "그러게 말이야"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자리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럼 이제껏 나와 친하게 대화한 사람들 중에 진심이 아니었던 사람도 있는 거겠네?' 등골이 오싹해지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내 조금 슬퍼지면서 아무도 믿지 못할 것 같은 불행한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이 친절은 정말 진심이다.'라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 어설픈 판단이 모호한 경계선에 있을 경우, 그런 부분에 무척이나 무딘 나는 그 친절한 말들이 진심인지 가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애매한 웃음으로 답하기도 했었다.


회사와 이별한 뒤, 계획했던 여행을 다녀온 후, 그간 고마웠던 사람들, 그새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몇 달 전 같이 회사를 다닌 분 들이었다. 길지 않은 공백이었지만 그간 회사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나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여행은 어땠는지 재취업은 어떤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점검했다. 단둘이 만나 서로 힘든 일들 들어주고 토닥토닥 위로하기도 했고, 여럿이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하며 왁자지껄 회포를 풀기도 했다. 또 오래 알고 지냈지만 소원했던 지인분들도 내가 좀 여유 있다는 소식에 ‘언제 얼굴 보자’를 당장 진행하게 되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조금 설레기 시작했고, 만나고 나서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흐뭇함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거웠다. 그래서 회사를 출근하지 않고 있어도 나는 가끔 너무 피곤해져서 다크서클이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았고, 홍삼이나 밀크시슬 같은 건강식품들을 챙겨 먹게 되었다.


그런데 약속이라는 게 단번에 장소와 시간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서로 가능한 스케줄을 확인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고, 약속 잡았다가 미뤄지거나 취소가 되는 경우들도 있다. 그럼 '다른 시간 언제 돼?'를 두어 번 반복하여 묻기도 하는데, 서로 바쁜 일정에 시간 내는 게 쉽지 않지 싶다가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얼굴 보자' 했던 것을 내가 덥석 진짜 약속으로 잡고 있어서 상대가 곤란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야말로 ‘정말 왔네, 무섭게시리’가 되거나 ‘진짜로 자기랑 친한 줄 착각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회사의 글로벌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퇴사하게 된 사람이니깐 말이다. 내가 아무리 당당해도 누군가는 내가 부족하거나 잘못을 저질러서 잘린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전히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나는 차이 나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다. 나와 엮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먼저 만나자고 하기 전에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있다. SNS에 올린 글을 보고 댓글이 달리거나 메시지가 오거나 전화가 와서 '만나자'라고 하기 전까지는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왜냐하면 나는 눈치가 없으니까. 그냥 한 이야기와 진심을 잘 구분하지 못하니까. 회사를 나오더니 이런 것까지도 신경 쓸 만큼 나는 작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로란님 만나고 싶어요. 같이 밥 먹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애처럼 그게 그렇게 반갑고 고맙고 설렐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또 달력에 일정을 기록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고, 약속을 생각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질척거리지 않으면서도 내 소중한 인연들을 확인하고 지키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니 외줄타기하듯 어렵다. 그러니 제발 내 사람들아, 나에게는 ‘그냥 하는 빈말’을 삼가고 ‘진심’만을 이야기해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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