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많은 우리들

각자의 사춘기를 절절하게 겪고 있는 나의 사십 대 친구들

by 니나

사춘기 (思春期)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異性)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春情)을 느끼게 된다. 청년 초기로 보통 15~20세를 이른다."



"저는 제가 뭐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에요."

"아직도 그 고민해? 아직도 사춘기인 거야?"

첫 번째 직장도 아니고 두 번째 직장에서 번듯한 대기업 직원으로 회사를 잘 다니고 있을 때였다. 전 직장 팀장님과 다른 몇몇 분들과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였는데, 내 고민을 들으시더니 아직도 방황 중이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셨다.


그 후로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그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이번에는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더 진해진 고민이니 훨씬 더 심각하다. 이 고민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나는 한 발자국도 걸어 나가지 못할 것만 같다. 비슷한 회사에 이직한들, 나는 몰입하지 못하고 겉돌다가 또다시 나를 잃어버리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마흔의 사춘기가 진하게 지나가고 있다.


20대에는 멋진 사람을 만나고 싶고, 멋진 회사를 다니고 싶고, 회의시간에 내 의견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면서 성과도 만들고 인정받는 모습을 꿈꿨다. 누구나 아는 회사 로고가 박힌 사원증을 목에 걸고 브랜드 커피 테이크아웃 잔을 손에 들고 점심시간에 회사로 복귀하고 있으면, 내가 뭐라도 된 것 같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커리어우먼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들 때도 있었다.


30대에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후배 사원에게 여러 번 업무를 지시하고 설명하고, 팀보다 본인이 우선인 팀장들을 보면서 내 또래 팀원들과 똘똘 뭉쳐, 퇴근 후 맥주 한잔으로 쳇바퀴 굴러가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뒷모습이 씁쓸한 어른의 흉내를 냈었다. 그리고 종종 들어오는 귀가 솔깃한 스카우트 및 이직 제안에 미래의 내 멋진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나는 꽤 잘 나가는 인재이구나 하며 어깨를 으쓱했었다. 그리고 그런 콧대 높았던 자부심은 오르막이 있으면 이내 추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가로막아 나를 어리석게 만들고 있었다.


40대가 되니, 무언가 달라져있었다. 30대 때보다는 좀 덜 열정적이라고 할까, 모난 돌이 둥글러 졌다고 할까.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기적으로 보였던 그리고 정치적으로 보였던 행동과 결정들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고 (이해가 되었다고 해서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 결정의 속에는 그들이 지켜야 할 가족, 부, 명성들이 숨어져 있어, 미래, 꿈, 자유를 위해 선택할 수 없는 아쉬움도 조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보인다는 것은 나도 그런 사람들이 되어간다는 소리일 테고. 그래서 나도 김동률의 '노래' 가사처럼 '웬만한 일엔 꿈쩍도 않을 수 있게 돼버렸지만, 무난한 하루의 끝에 문득 뾰족했던 내가, 그 반짝임이 그리워'졌다. (의미 전달을 위해 가사의 단어 순서를 조금 바꿨다)


40대가 되어 그런 사람으로 달라진 다는 것은, 끝날 줄 몰랐던 30대의 상승세가 곧 꺾일 수 있겠구나 라는 불안감이 가시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푹 자도 좋은 영양제를 먹어도 운동을 해도 체력은 30대처럼 올라오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에는 예전처럼 기민하게 적응하기가 아무래도 어렵다. 내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싶어도 '꼰데'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위축되고, 나보다 어리고 잘난 직원들에게 치일까 봐, 내 윗사람에게 밉보여 책잡힐까 봐 그 사이에 끼여 이리 눈치 보고 저리 눈치 보다 보니, 내 반짝반짝한 인사이트는 선뜻 드러내놓을 자신조차 없어지다가 희미하게 색이 바래지고 있었다. 그리고 같이 일하자 라는 오퍼도 예전과 달리 줄어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서점에 간다는 친구 H는 과거 어느 날 유발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읽더니 우리 인간은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고 고민하더니, 이제는 챗GPT로 화재가 된 AI (인공지능)가 우리 인간을 대체할 것인지? 혹은 우리는 그것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지?라는 좀 더 구체적인 고민에 빠져있다. 그러나 그게 뭐든 그 고민의 최종 종착지는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여서 여전히 나와 같은 사춘기를 아프게 겪고 있다. 같이 책도 뒤적거리고, 북토 크도 가고, 각자의 궤변인지 논리인지 인사이트인지 헷갈리는 열띤 토론도 하고, 나름의 소결론도 함께 내렸다. 그래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고 여전히 '그래서 난 뭐 하고 살지? 어떻게 살지?'라는 고민의 답은 똑 부러지게 나오지 않았다.


3년 전 나보다 먼저, 그리고 나와는 다르게 회사에 사표를 던져내고 나온 친구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말렸음에도 훌훌 뿌려 치고 나온 내 친구 S는 지금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회사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일하던 그녀가 공방에서 나무냄새를 맡으며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무척이나 생소하면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어디선가 그런 모습을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처음부터 잘 어울렸다. 밤을 새워 도구를 갈고, 과제를 하고,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여간 벅찬 게 아니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너무 좋아.'라고 수줍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로또 1등 당첨된 사람보다 더 부러웠다.


이 고민의 결론이 내려지면 나의 마흔 사춘기가 끝나고 진정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방법으로 그 고민의 결론을 탐색해야 할지, 나에게는 어떤 결론이 숨어져 있을지, 그 결론 후에는 후회 없이 그리고 더 이상의 고민 없이 앞만 보고 전력질주 할 수 있을 것인지, 여전히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고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완성된 성인이 아니고 불완전하고 부족하니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것일 게다. '마흔이 넘어 아직도 그래?'라고 누군가는 핀잔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니까. 이 사춘기를 성실히 잘 임한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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