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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Jul 24. 2023

음악 필터

차 창문을 닫고, 음악을 적당한 볼륨으로 틀고, 혼자 하는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주로 적당히 말랑말랑한 멜로디에 빠르지 않은 템포의 음악들을 좋아한다. 가끔 가요일 때도 있고 클래식 음악일 때도 있고 주로 어쿠스틱 음악이거나 팝인 경우가 많다.


적당한 속도로 음악과 함께 도로를 미끄러져내려갈 때 느낌이 좋다. 내 속에 남아있는 불편한 감정들의 찌꺼기들이 음악과 함께 도로 위에 버려져 사라진다. 깊은숨이 내 쉬어지고 이내 눈앞의 풍경은 예쁜 영화가 되어버린다. 찰리 푸스 (Charlie puth)의 'Girlfriend'라는 곡을 들을 때 횡단보도를 걸어 지나가던 젊은 남녀들은 어디선가 깔깔 거리며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에 겨운 사이가 될 것 같다. 어쿠스틱 카페 (Acoustic Cafe)의 'Last Carnival'을 들을 때면, 꽉 막힌 도로 위에서라도 나는 조금 짭짤한 냄새가 나는 바닷바람이 지나가는 가파도 청보리밭 한가운데에 서있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 바람이 내 가슴을 쓸고 지나가, 답답하고 끈적이는 것들이 사라지고 내 몸은 땅에서 아주 살짝 뜬 느낌이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그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아 이내 눈을 부릅뜨고 앞차를 노려본다. 피아노 선율이 슬프고 아름다워 처음 들을 때는 라흐마니노프의 곡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18번'은 그게 어디든 지금 이 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향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단, 꼭 음악이 함께여야 한다. 너무 빠른 템포 곡이나 후킹송은 거절한다. 신호대기 중인 핸들 위의 손가락이 살짝 까딱거릴 정도의 흥겨움이어야 한다. 머리보다는 몸이나 내 호흡이 먼저 음악을 느끼는 게 더 좋다. 그럼, 피로에 지쳐 집으로 가는 직장인들도 오늘을 훌륭하게 살아내고 내일을 준비하는 작은 히어로가 된다. 더운 여름 햇살 아래 유모차를 미느라 지친 엄마도 꼿꼿한 자세에 빠른 발걸음이 경쾌하다. 가로수 나무들은 특별한 빛을 반사하고 하늘은 아찔하게 낭만적이게 된다. 이 모든 건 나의 착각이고, 시동을 끄고 음악이 꺼지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 듯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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