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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Jun 30. 2023

에세이가 좋다

그 사람이 온다

    나는 책을 편식하는 편이다. 어릴 때는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거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이 분명한 소설들을 좋아했다. 책장에는 아빠가 보려고 사 오시는 책들과 내 취향에 맞춘 책들이 나란히 있었다. 동화책이나 학생들을 위한 책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에 이미 다 떼버려서, 나는 이해하든 못하든 세계 문학에 속하는 책들이나 아빠가 사 오시는 책들을 함께 뒤적거렸다. 손이 가는 책들은 대부분 소설들이었고, 가끔 시집이나 수필들도 들었지만 영 밍밍하고 심심한 맛이라 이내 책장에 꽂아두었다. 자기계발서적은 두툼하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제목과 표지여서 아예 손을 뻗지 않았다. 그중 아직도 생각나는 책 제목이 있다. '삼성이 2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 뭐 그런 식의 책이었는데, 지금 명실상부 1위 그룹이니 역시 자기계발서적은 딱 그때가 아니면 아닌 것 같다.  반면에 최근 책장을 정리하다 내가 작년에 산 책과 아빠가 샀던 책이 겹쳐서 놀란 적이 있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었는데, 오랜 세월 버려지지 않고 책장의 한 귀퉁이를 지켰을 그 녀석이 짠했다. 어린 시절 아빠를 따라 책을 읽다 보니, 나이가 부쩍 들어서도 그 시절의 아빠와 책 취향이 겹치는구나 싶어 반갑고 따뜻했다. 


    소설은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살아볼 것 같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서 좋았다. 극적인 요소들이 모여 책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을 주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긴장의 끈을 풀어놓으면서 많은 것이 해결되고 속이 시원해진다. 이어 감동이 불쑥 밀려오다가 이제 더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볼 수 없음이 아쉬워진다. 가끔은 속이 시원하다기보다는 먹먹해지는 결과에 책을 닫았음에도 그 마지막 시간에 내가 갇혀 끝나지 않은 가슴 저림을 겪기도 한다.


    에세이는 그런 소설에 비해 뭔가 밋밋했다. 우와 하는 스릴이나 긴장감보다는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고 바깥 날씨를 살피다 커피를 내리는 것 같은 그냥 그런 일상 같았다. 나도 이미 경험하고 있거나 혹은 경험할,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은 이야기에 작가의 생각들이 이렇게 저렇게 붙어있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도 그 당시 나에겐 그랬다. 우리 집 책장에도 어김없이 그 책이 있었고, 엄마 아빠가 종종 다시 열어보곤 했던 책이다. 궁금해진 나도 책을 열어봤는데, 선물 받은 화분 때문에 외출하는데도 전전긍긍 걱정했다는 이야기는 뭐 그리 신나지도 흥분되지도 않았고, 신기하거나 특별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밋밋했던 에세이들이 요즘 들어 소설보다 더 자주 내 손에 잡히고 있다. 그리 새로울 것 없을 동네 산책에, 사람들 만남에, 집안 청소에, 책 속의 사람들은 특별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읽다 보면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소파에 파묻혀 혼자 낄낄거리기도 한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보면서는 '나도 저렇게 잘 맞는 친구랑 살고 싶다. 아니 같은 동네에 저런 친구 한둘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라며 어찌나 부러워했던지. 엘리베이터로 감자를 배달하고 그 감자로 만든 카레로 동네에서 파티를 하게 된 이야기는 신기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어린 시절 현관문을 열어두고 지내던 복도형 아파트의 추억이 생각났다. 우리 집 열린 문으로 동네 친구나 동생들이 불쑥 들어와 아줌마~ 목말라요~ 하며 우유며 과자며 얻어먹고 나랑 놀러 나갔더랬지. 가수이자 작가인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는 읽는 내내 떡볶이를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달짝 매콤한 고추장 소스에 범벅이 된 떡과 어묵이 먹고 싶어서 책을 닫자마자 배달 앱을 켜서 야심한 밤에 떡볶이를 먹고야 말았다. 맛 개선이 필요하다고 타박 같은 메시지를 보냈던 떡볶이 집이 폐업한 사실에 마음 졸인 이야기에는 나 또한 이 세상에 생겨난 무언가는 쉬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유진목 시인의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는 책은 읽는 내내 그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되었고, 점차 여행자가 되어가는 그의 모습에 내가 더 안심이 되었다. 다행이다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하노이 거리와 사람들을 찍은 필름 사진들을 보며, 내 서울여행자 사진 활동에도 더 박차를 가해야겠다 생각했다. 지금 읽고 있는 아티스트 이자람의 '오늘도 자람'을 보면서는 우리 가야금 선생님이 생각나기도 하고, 성음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꼬 싶어,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그의 공연이 있는지를 검색하고 마침 오픈한 판소리 공연이 있어 맨 뒤쪽 구석에 있는 마지막 한 좌석을 재빨리 예매했다. 이번 주말에 나는 그 공연장에서 어설프게, 단 방해되지 않게 그의 이야기에 추임새를 넣고 있을 것이다.


    에세이에는 실제 삶과 통증과 생각과 의지가 있다. 그 안의 주인공은 소설과 달리 실존하며 이야기는 현재를 생생하게 흘러가고 생각과 깨달음은 진정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저자의 팬이 되었다가 친구가 되었다가 가족이 되었다가 본인이 된다. 저자의 세상을 그의 눈으로 함께 봐주고 나는 미쳐 하지 못했던 생각을 깨닫는다. 그냥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나고, 그 세상에 들어간다. 그래서 그 사람이 더 궁금해지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 마음은 이내 나에게로 향한다. 나의 일상, 생각, 인생도 지금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다. 더 알고 싶다. 그리고 내가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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