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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Jun 01. 2023

나는 꽃이 좋아 어쩔 줄을 모르겠다

  생일주간이 시작되었다.


  생일 하루만 챙겨 먹으면 될 것을 생일주간이라고 칭하면서 꼭 그날이 아니더라도 핑계를 대고 사람들을 만나고 선물을 받고 축하주를 마시고 흥청망청 나이 한 살 더 늘어남을 축하한다.  오늘따라 팔자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고, 이마 보톡스를 맞을 때가 된 것 같고, 아침에 바른 선크림이 들떠서 모공에 하얗게 낀 게 보이는데, 그래도 생일 주간은 괜스레 좋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나오니 부재중전화가 와있다.  전화를 해보니 꽃배달 오신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아저씨 중간 정도로 되어 보이는 목소리다.  

"앗, 문고리에 걸어두시면 제가 바로 찾아갈게요~"


  주섬주섬 문을 열어도 되는 복장으로 정리한 뒤 빼꼼히 문을 열어보니, 문에 꽃이 걸려있다.  나 꽃이오~ 하듯 옅은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꽃들이 조화롭게 그리고 부채춤처럼 커다랗게 동그랗게 얼굴을 밖으로 들이밀고 얼른 가져가라고 보채고 있다.  흡사 소쿠리 같은 집에서 엄마 젖 달라고 고개를 위로 바짝 쳐들고 반짝거리는 눈망울을 끔뻑거리는 아기 강아지 떼 같다.  


  곱게 아기 안듯 품에 안고 들어와 어디에 둘까 두리번거리다, 햇살이 이쁘게 들어오고 있는 창가 하얀 테이블을 치우고 그 위에 올려두었다.  원래도 이쁜 아이들이 햇빛을 받아 반사하며 생글거린다.  꽃을 좋아하고 꽃사진 찍으면 나이 든 거 라는데, 상관없다.  핸드폰 카메라로도 이 각도 저 각도 찍고, 필름카메라도 꺼내서 신중하게 두 컷 찍어두었다.  


  나는 꽃을 좋아한다.  산과 들에서 보이는 이름 모를 꽃부터, 주택가 현관과 벽을 심심하지 않게 꾸며주고 있는 화분들에 난 꽃들도, 그리고 이렇게 돈을 들여 예쁘게 다듬고 치장한 꽃들도 다 좋아한다.  산과 들에서 만나는 꽃들은 그야말로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뿌리고 있어, 향기에 취해 걷다 보면, 커다란 숲이 산이 들판이 나의 등장을 기꺼이 환영해 주고 무리에 넣어주는 기분이 든다.  주택가 꽃들은 그 집의 주인분의 취향을 알 수 있어서 재미있다.  빨간 들장미 화분 옆에 상추를 심어둔 화분이 껴있는 모습이나, 담자락 위에 참새가 앉아있듯 줄지어 앉아있는 선인장이나 다육이들은 이 아이들을 보고 가꿀 이 집에 거주하시는 분의 소소한 행복이라 생각하니 나도 행복해진다.


  그렇다 보니 그 꽃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늘 다르다.  뿌리를 흙속에 박고 있는 나무나 풀들에서 나는 꽃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지나갈 수 있다.  산에 있든, 차도와 인도 사이 작은 틈 사이로 삐죽 나와있든, 화분에서 피어나 있든, 그 흙속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길든 짧든 생장과 시들어감을 반복하며 살아갈 테니.  그리고 꽃집에서 하나 사가세요~ 하면서 나와있는 꽃다발들은 보기에는 좋지만 크게 관심은 없다.  한층 치장한 자태가 이쁘기도 하지만 내 것이 아니며, 곧 시들겠다는 생각에 괜한 슬픔이 올라와 눈길을 빠르게 거둬버린다.


  그런데 이렇게 내 생일이나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해 받은 꽃은 너무 소중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내 취향에 맞춰 선별된 꽃들이 그냥 둬도 이쁠 텐데 한꺼번에 모여서 얼굴들을 나한테 들이밀고 있다.  이 꽃을 선물한 그 사람의 마음씀씀이가 고맙고 이뻐서 더 소중하다.  그런데 그 뿌리가 흙에 닿지 않아 언제 아스러질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이 짧은 시기를 어떻게 소중하게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덜컥 든다.  게다가 이 아이들은 내가 혹여나 물 갈아주는 것을 까먹으면 금세 시들어서 반나절만에 되돌아올 수 없는 지경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내 손에 달려있는 아름다운 시한부라고 생각하니, 그 마음이 절절하고 애처롭다.  


  이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 절절함도 없어지니 지금처럼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겠지?  사람들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고 부러워하기에, 며칠간 잠시 내 손에 있다 사라질 저 꽃들도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길게 품고 싶은 거겠지.


  그래서 나는 꽃다발 선물을 너무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힘들다.  아름답게 빛나다 아스라이 스러질 그 아이들의 요 며칠이 내 생일주간이라고는 해도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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