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의 <구의 증명>을 읽고
두 연인의 지독한 사랑이야기. 아니 그 정도로는 표현이 어렵다. 돈이 최고인 시대에 부모 잘못 만난 죄로 빚의 노예가 된 청년 이야기. 그렇긴 하지만 그건 부분일 뿐이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고찰하게 만드는 이야기. 완벽하진 않지만 그 정도가 아닐까 한다.
구라는 남자아이와 담이라는 여자아이가 어릴 때부터 함께 혹은 떨어져서도 함께해 온 이야기,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을 봤다. 오랜만의 묵직하고 어두운 소설이었다. 책을 닫으면 현실이었다가 여는 순간 다시 어두운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급기야는 멀미가 나고 구역질이 나고 체한 것 같았다.
그 둘 사이의 끈끈한 감정의 한 방울이 그 둘을 외부와 차단할 정도의 단단한 막을 만드는 것 같아, 같이 있어도 떨어져 있어도 그 둘은 두 인물이 아니라 하나인데, 어쩌다 둘로 나눠져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구가 죽고 담이 그의 몸을 뜯어먹는 건 어쩌면 당연한 회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 기억과 시간과 그리고 유일하게 떨어져 있는 육체를 합치기 위해서는 먹고 먹어서 하나가 되는 수밖에. 그리고 이 세상에 외롭게 살아내다 괴롭게 죽어간 구를 기억하기 위해 담이는 오래오래 살아내는 수밖에. 그렇게 담이는 이미 죽어버린 구의 존재를 증명하는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천년만년 살아낼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함께하는 게 아니라, 불행해도 같이 있는 것을 선택한다는 담. 너와 헤어진다면 행복해도 네가 생각나서 행복할 수 없고, 불행하면 너를 떠나 벌 받는 것이라 생각할 거니, 어차피 외롭고 불행할 거니 함께 있자고 하는 담. 그 담이의 말들을 보는 내내 흠칫 놀랐고, 동시에 가슴에 콕콕 새겨졌다. 어디서부터 사랑이었는지, 언제부터 집착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내가 그리고 그가 살아내기 위해 그에게 했던 말들이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네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었다. 모르는 채로 영영 궁금해하며 기다리기보다 불행해도 옆에서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었었다. 그때의 내가 생각나서 책을 보는 내내 울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그 선택은 담이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부터 구의 죽음에서 시작한 소설이었다. 이 책은 살을 뜯어 삼키고, 그와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또 뜯어 삼키고, 그를 기다렸던 순간을 기억해 삼키고, 그를 보내기 위한 혹은 그를 온전히 내 것으로 하기 위한 장례식이다. 그럼에도 그가 돌아온다면, 그가 다시 살아낼 수 있다면 이라고 간절히 바랐었다. 그럴 수 없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담이는 최선을 다해 삼켰다. 남겨진 자의 허망함을, 텅 빈 가슴을 그것으로 메우기라도 하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