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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Sep 03. 2023

우리의 월든을 찾아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좋아하는 친구 S에게

안녕 나의 사랑하는 친구, 

얼마 전 너의 집 책장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보고 "헨리가 월든을 쓸 때, 엄마 집에 몰래 숨어들어 빨래도 하고 쿠키도 먹고 그랬데" 라며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본 내용으로 어설프게 아는 척을 했었지. 그때 너는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인데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해." 라며 볼멘소리를 했었어. 평소에는 싫은 소리, 싫은 내색 잘 안 하던 너인데 놀리듯 이야기하는 내 말에 그렇게 상처받은 목소리로 답하는 것을 듣고,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오히려 아무 말도 못 했었어. 그때 결심했었어. 내가 월든을 제대로 읽겠다고. 읽어보지도 않고서 어설픈 아는 척으로 너에게 상처 줘서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해야겠다고. 


그래서 나는 대략 2주간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단다. 사실 초반에 헨리가 (편하게 헨리라고 말할게) 직접 나무를 구해서 집을 구할 때에는 이 금액이 적은 금액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자꾸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을 미개인이라 칭하고, 백인을 문명인이라 부르는 게 영 불편하고 마뜩잖아서 재미를 못 붙였단다. 게다가 글의 흐름이 종종 이리저리 건너뛰는 것 같아, 내 약한 독해력으로는 진득하게 앉아서 다 읽어내기가 너무 힘들었었어. 두장을 채 넘기지 못하고 소파에서 스르륵 잠이 든 적도 많았지.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서, 얼마 전 가입하게 된 고전 북클럽에서 <월든>을 읽자고 했었어. 그렇게라도 배수진을 치지 않으면, 다 읽어내기 힘들겠다 싶었거든. 내가 너한테 그때 참 많이 미안했다는 걸 이런 걸로라도 조금 알아준다면 나는 참 행복할 것 같아. 


그렇게 해서 읽어낸 월든은 중반이 넘어가면서 좀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 아름다움을 세세히 묘사한 글들도 보는 재미가 있었고, 거침없는 비판과 이리저리 뛰는 글의 흐름이 어느 순간 순수한 어린아이의 시선 같아 보였거든. 특히 개미들의 싸움을 관찰한 에피소드나, 참새 한 마리가 어깨에 앉을 때 우쭐했다는 부분에서는 그의 소년 같은 모습이 보이기도 했었어. 또한 빠른 산업화로 나타나는 물질주의와 과한 소비행태를 경계하는 그의 생각도 동의가 되었고, 종종 반짝이는 그의 문장을 보는 재미들도 있었어.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결국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으니, 무욕에 가까운 생활을 잠시 실험할 수 있었을 거라 믿는 내 생각은 크게 변함은 없어. 가진 것이 없고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는, 그러나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는 사람에게는 과하게 땀 흘리지 않는 노동으로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콩을 재배하거나 낚시하는 것만으로는 평생을 살아내기 힘드니까. 나는 그의 2년 2개월의 실험이 당시의 백인 지식인에게 일침 하는 메시지를 만드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는 메시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해. 그의 2년 2개월은 30년 50년 평생 지속가능한 형태의 삶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럼에도 앞만 보고 내달렸던 회사원으로써의 내 생활을 복기하고 지금 의도적인 느림을 행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면 왜 현대에 들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역주행하는지 이해가 돼. 내가 바로 그가 해보았던 과한 자본주의에서 막 탈출하여 자연을 느끼고 느린 삶을 영위해 보는 짧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니 말이야. 나의 이런 의도적인 느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 생각으로 평생은 힘들 것 같아. 그러나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고 자본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월든에의 회귀가 종종 디톡스처럼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어.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계기를 마련해 준 너에게 감사해. 


네가 늘 이야기하는 '적게 벌어서 적게 먹고살지 뭐'가 의미하는 바를 예전보다는 좀 더 뚜렷하게 알게 된 것 같아. 그게 네가 너의 인생의 주인이 되는 방식이라고 이해가 돼. 그렇게 너도 나도 각자의 인생에서 적합한 방식을 찾아가자. 너는 너만의 월든을 나는 나만의 월든을 만들어보자. 나는 간혹 나의 월든을 별장처럼 찾을 것 같아. 계속 그렇게 살기에 나는 아직 욕심이 많은 것 같아. 그러나 그 욕심이 꿈을 넘어서고, 돈이 나를 잡아먹지 않게 경계할게. 좋은 책 알려줘서 고마워 친구. 그리고 전에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느라 너에게 상처 줘서 미안해. 월든의 오두막에 찾아오는 반가운 방문객처럼 네가 좋아하는 빵과 쿠키를 들고 찾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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