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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Sep 07. 2023

할머니, 나중에 다시 만나요

외할머니가 위독하단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아,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굴리며, 친구 만나러 외출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이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 할머니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키가 자그마하고, 똘망똘망한 눈이 귀엽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기억력과 머리가 좋고, 고지식한 호호할머니다. 올해 나이 96세에 비록 마지막 몇 년은 요양병원에 계셨지만, 당신의 며느리인 나의 외숙모가 근무하시는 곳이어서 가끔 ‘나는 뒷배가 든든한 사람이다.’ 느낌으로 같은 층 친구들 사이에서 젠체한다는 소문도 들었었다. 최근 2-3년은 코로나로 면회가 어려워 화상통화로 직접 찾아뵙는 수고로움을 대신했었다. 코로나가 좀 나아지고는 엄마와 이모가 다녀와서 안부와 소식을 전해주었어서 종종 본 듯한 기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못 본 지 꽤 오래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너 쉴 때, 할머니한테도 같이 가고 그럴랬는데.’라는 엄마말도 들어놓고, 왜 실천에 못 옮긴 걸까. 후회해 봐야 늦었지만 그래도 후회만 가득한 마음으로 짐을 챙겼다. ’로란이랑 온다더니, 로란이 회사 다니느라 바쁘재?‘라고 했다던 할머니 말이 머릿속에 자꾸 맴돌았다. 이틀 뒤 싱가포르 여행 출발일이어서 발인하자마자 서두른다면 갈 수도 있었겠지만, 여행이 기대되기보다는 그간 할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은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죄스러워서 여행은 취소했다. 그리고 나는 포항으로 갈 차비를 했다.


 KTX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파랬고, 동글동글 예쁘게도 떠있는 구름들은 할머니 하얗고 복실거리는 머리가 생각나게 했다. 그렇게 예쁜 날 할머니는 더 예쁘게 화장하고 입술에 오랜만에 핑크색 립스틱도 바르고 입관하셨다. 보는 순간 그냥 편안하게 자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 팔을 주무르고 흔들면 눈을 뜨고 일어나 ‘아이고 우리 손녀 로란이 왔나.’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손도 만져보고 몰랑몰랑한 팔도 마녀보고, 이제는 너무 작아서 뼈만 만져지는 어깨도 만지고 조금 흔들어보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계속 자고 있었고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 얼굴에 삼베천이 씌워지고 삼베끈으로 몸을 동여매니 답답하다 풀어달라할 것 같았다. 다행히 그 끈은 관으로 이동한 후 풀었는데, 관을 예쁘게 장식한 장미꽃과 안개꽃들이 생명의 싱싱함으로 할머니 주위를 감싸니 평소 꽃을 참 좋아하는 나지만, 죽음과 삶이 맞닿아 부딪히고 있는 그 경계가 어색했다.


할머니 덕분에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 얼굴보기 쉽지 않은 사촌들과 그 사촌들의 아들딸들도 한 자리에서 보았다. 가끔 만나 어색했던 2-30대를 지나 어느새 우리는 모두 40대의 아줌마 아저씨 들이 되어있었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좀 더 여유로웠고, 드문드문 유머러스한 능글거림도 있었다. 바쁘겠지만 그래도 자주 이야기하고 장례식이 아닌 곳에서도 모여보자는 마음에 단체채팅방도 만들었다.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비슷해서일 수도 있고, 예전보다 조금 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내 이제는 마음이 조금 더 여유 있는 나이여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를 지켜보는 할머니가 그렇게 몰아간 걸 수도 있겠다.


발인 전날 밤, 근처 모텔에서 엄마, 이모, 외숙모를 모시고 잠을 청했는데, 피로가 온몸을 덮쳐 눈을 뜨기 힘들고 뒤통수가 당겨왔지만, 막상 침대에 누우니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가 적막을 깨고 이모에게 말을 걸었다.

“가자미밥식해 있재 언니야. 그거 참 맛있었는데.”

“그렇지. 엄마가 참 맛있게 했지. 무도 넣고.”

“이제 그거 못 먹겠네. 먹고 싶었는데.”

나이가 들어 천수를 누리고 간다 해도, 그래도 엄마는 엄마다. 엄마의 죽음은 어딘가 큰 구멍이 뚫려서 휘휘 바람이 불고 귀신 휘파람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리듯 무섭고 생경하고 쓸쓸하다. 그 부재는 무겁다. 나의 엄마는 엄마를 잃고 이제 고아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굵직한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다 몸소 겪으며 살아내신 우리 할머니. 남편, 아들들, 사위들 먼저 보내고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내신 불쌍한 우리 할머니. 96년의 인생이 한 줌 흙이 되는 화장장에서 아랫배에서부터 쑥 올라오는 울컥거림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딸, 며느리, 손주들, 증손주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셨다. 그 유해는 선산의 한 소나무 아래 묻혔다. 그 소나무는 늘씬하고 잘생겼으면서도 밑동이 그저 직선이 아니고 조금 구불구불한 게 멋스러웠다. 가볍게 흙을 덮고 작고 납작한 돌들을 몇 개 올리는데,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왠지 할머니도 편안하신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무덤의 봉도 없지만 우리는 그 장소를 기억하고 할머니가 그리우면 가끔 그 소나무를 찾아올 것이다. 내려오는 길, 하늘은 새파랗고 구름은 할머니 머리처럼 몽글몽글 새하얗고 바람은 땀을 식히기 참 좋게 선선했고 햇빛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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