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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Sep 09. 2023

예술을 소유한다는 것

Kiaf Seoul 2023을 보고

가끔 만나지만 오래 알아 편한 친구 S와 Kiaf에 다녀왔다. 올해도 혹시 못 볼까 봐 아쉬웠는데 이래저래 일정이 되어 금요일 오후에 코엑스에서 만나 같이 입장했다. 일부러 편한 운동화에 편한 고무바지에 백팩을 메고 갔다. 그나마 백팩도 사물함에 맡기고 핸드폰만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사진을 찍었는데, 작년에는 '내가 살 것도 아닌 데 가서 뭐 해.'라는 마음으로 '굳이' 찾지 않았었던 생각을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빼곡히 들어찬 갤러리들과 작품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갤러리마다 특색이 다르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김환기나 김창열과 같은 거장의 작품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살바도르 달리의 우주코끼리 조각까지 보는 호사스러운 즐거움을 누렸다. 


작년에 왔던 사람들은 관심 있는 작가의 작품들 가격이 많이 오른 것에 놀라기도 했었다. 마침 샀던 작품이 많이 올라 흐뭇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주머니 사정이 그림을 덥석 살만큼은 아직 아니어서 그림을 보는 안목을 좀 키운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좋은 작품을 한자리에서 한 티켓으로 볼 수 있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전시회를 즐겼다. 같이 간 S는 미술을 좋아하고 전공하고 싶어 하는 딸이 생각나 다시 와야겠다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다리가 붓고 허리가 뻐근해질 때까지 돌아다녔다. 


요즘 추상화에 빠져있어, 김태호 작가의 내재율이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색 물감이 부피감 있게 끈덕지게 올라간 작품인데, 단색화 이긴 하나 반복되는 패턴에 선명한 보색들이 겹겹이 쌓여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주의 물질이 흐르듯 연못의 물이 천천히 어딘가로 흘러가는 듯하여 몽환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림을 산다면 내 수중에 얼마가 있고 얼마가 가능할지를 계산해 보며 직원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저 작품은 얼마인가요? 네 8천4백만원입니다. 넘사벽 금액을 듣는 순간 너무 움찔하고 놀랬지만,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내 동공이 커지고 떨리는 것까지는 아마 숨기지는 못했을 거다. 


돌아다니다 보니 내 집에 걸어둔다면, 매일 저 그림을 보며 힐링할 수 있겠네, 즐거울 수 있겠네, 재미난 상상을 할 수 있겠네, 같은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많았다. 전시회에서 그냥 감상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산다면...'이라는 가정을 두고 보니 욕심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즐거웠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그냥 보고 좋은 그림이 아니라, 이왕이면 잘 자라날 새싹들을 찾아 그 사람의 그림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머니 사정에 맞춰 좀 더 저렴한 그림을 사서 즐기면서, 그 사람은 자신의 그림이 팔렸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고 재정적인 안정감을 조금이나마 더 느끼면서 계속해서 표현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선순환일까. 아쉬운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내가 그럴 안목과 능력이 안된다는 것인데, 예술에 대한 내 취향도 좀 더 다듬고 키워서 내년 즈음엔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예쁜 것, 남들이 탐 낼 만한 것을 집안에 들인다는 게 아니라, 나에게 영감을 주고 예술가를 지원할 수 있는 구매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Kiaf Seoul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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