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가 뭐래도 술이 맛있어서 먹는다

김혼비의 <아무튼, 술>을 읽고

나는 알쓰다. 알쓰는 알코올쓰레기의 약어로 내가 붙인 게 아니라, 자타공인 술과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알고, 술모임의 호스트를 멋지게 해내며, SNS에는 늘 힙한 술맛집 포스팅이 올라오는 N양이 붙여준 별명이니 신뢰해도 될 별명이다. 술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두 잔부터는 헤롱헤롱해서 같이 술 마시는 사람들 술맛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하니, 알코올쓰레기라는 별명이 붙을 수밖에. 그래도 나는 누가 뭐래도 술이 맛있어서 먹는다. 나에게 술은 맛있는 음식의 연장이며, 메인 메뉴와 잘 페어링 된 술 한잔은 그게 어디든 미슐렝 쓰리스타 부럽지 않은 다이닝이 된다. 그러니 엄연히 따지자면 술을 해독 못하는 내 간이 쓰레기인거지, 내 자체가 알코올 쓰레기는 아니다.

그래서 김혼비 작가나 이 책에 나오는 술친구들이 부럽다. 혼자 소주 한 병 정도는 비우는 수준이 되고 싶다. 프랑스 코스요리 각각에 맞는 와인 페어링을 끝까지 즐겨보고 싶다. 뜨끈한 술이 찌르르 식도를 타고 내려오는 느낌이 아찔한 독주를 겁 없이 마셔보고 싶다. 그러나 나는 못한다. 그러니 마셔봐야 맥주, 와인 한두 잔 정도다. 간혹 아끼고 아껴 코냑이나 위스키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원하는 만큼 충분히 먹지는 못한다. 참, 여기서 아낀다는 건 술이 아니라 내 간이다. 나는 술을 아끼고 싶지 않아도 아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처지다. 그래서 좋아하는 몽키진을 오픈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다 비우지 못했고, 선물 받은 토끼소주는 아직 까보지 못했다.

요 며칠 좀 신나고 웃기고 즐겁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서촌을 산책하다 들른 서촌 그 책방의 ‘웃겨 넘어간다.’는 책방 사장님의 추천 메모를 보고 덥석 고른 책이다. 아무튼 시리즈는 요조 씨의 아무튼 떡볶이 이후 좋아하게 되었는데, 아무튼 떡볶이도 초초 강추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웃고 낄낄거리려고 샀으니 완전 성공이었다. 그렇다고 늘 웃다 넘어가는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욕을 배우는데 잘 안되더니, 인생이 욕 같을 때 나도 모르게 찰지게 나왔다는 에피소드나, 술 먹고 진상 부린 택시 기사님이 보낸 ‘힘내세요’라는 메시지에 울어버린 이야기엔 그게 너무 나 같아서 코가 찡했다.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건 참 명문이다. 알쓰이지만 술을 사랑하는 바람에 프로 집술러인 나는 나이도 나이고 체력도 챙겨야 해서 저 문장을 보고 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착각했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다. 이래서 말은 끝까지 잘 봐야 한다.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지금도 맥주 한 병을 따서 천하장사 소시지와 함께 나만의 혼술을 즐기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무튼, 아무튼 시리즈는 위험하다. 아무튼 떡볶이를 보고는 자정이 다 되어 떡볶이를 시키고야 말았는데, 이 번엔 자정이 다가오는 이 밤에 술을 또 까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