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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Sep 19. 2023

약 대신 글쓰기

너를 알게 되어 다행이야, 성북동 소행성

몸이 아프면 상비약을 주섬주섬 챙겨 먹다가, 그것도 안되면 병원에 간다. 선생님 진찰을 받고 간단한 검사를 하기도 하고 병명을 확인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일단 들어와서 잠을 푹 자고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면, 나는 대체로 그 마음을 외면했었다. 주변의 도움과 추천으로 잠시 병원을 가기도 했지만, 약물치료가 꼭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고, 오히려 선생님께 솔직히 털어놓고 상담받는 게 조금 도움이 되었었다. 그렇지만 짧은 상담시간으로 내 속을 다 털어놓기도 힘들고 어디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했었다. 


뭐라도 해야지 싶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중 우연인지 운명인지 (나는 운명이라 믿는다) 성북동 소행성 글쓰기 워크숍을 알게 되었고, 아무 준비도 없이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저녁 마침내 그 대장정을 마쳤다. 5월 1일에 시작하여 격주 월요일마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점검받고 동기들과 짧은 수다를 나누었다. 봄이 여름이 되고 다시 서늘해진 가을이 되는 계절의 변화를 나는 성북동에서 느꼈다. 조금 일찍 간 날에는 길상사를 돌아다니다 모기에게 우다다 물리고, 카페나 편의점에서 시원한 음료를 찾았고, 소행성의 한옥 문지방을 넘으며 손수건으로 땀을 훔쳤더니, 어느새 바람은 선선해져 우리가 이제 이별할 시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니던 곳이라 어느새 내 맘속에는 이곳이 내 학교 같고 직장 같고 그랬나 보다. 나도 모르게 나는 이곳에 적을 두고 서울을 여행하고 다녔던 것 같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나는 아프던 마음을 소행성에서 치유했다. 글쓰기 워크숍인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편성준, 윤혜자 선생님이 부업으로 한약방이라도 하시는 것은 전혀 아니고, 글쓰기를 하다 보니 내가 나아졌다는 뜻이다. 글을 쓰면서 내 아픔을 직면했고, 쓰다 보니 그 아픔에서 벗어났고, 자연스럽게 나를 아프게 한 그 모든 것이 용서가 되었다. 나를 그 글에 남김으로써 나는 새로이 태어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매번 갈 때마다 나는 달라졌고, 이어 내 글도 진화했다. 동기분들이 모두 에세이를 쓰시다 보니, 살아온 이야기와 속이야기를 많이 오픈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조금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우리는 속사정을 털어놓은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겼었다. 만난 횟수로 보면 그리 많지는 않았겠지만, 나를 울린 그 이야기가 꼭 책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울림을 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도 커져갔다.


이렇듯 소행성에서 나는 글쓰기를 통해 건강해졌다.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물론이며 매일 글을 조금씩 쓰는 습관도 생겼다. 출판환경과 과정도 알게 되었고, 책 쓰기를 위한 기본 (기획, 목차 세우기, 글감 모으기, 메시지 담기 등)에 대한 트레이닝도 꾸준히 받게 되어 출판의 꿈도 꾸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책들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앎과 생각은 약간 더 깊어지고 이런 변화는 내 평생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두 선생님이 나에게 글 선생님뿐만 아니라 인생 선생님이 되어버렸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한 사람, 변화를 시도하고 싶은 사람, 성장하고 싶은 사람, 좋은 글쓰기와 책 읽기 습관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감히 추천한다. 성북동 소행성으로 오라고. 단, 쉽지 않은 과정일 수 있으니 각오는 단단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주에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잠을 잘 못 잤고 악몽도 꾸고 혓바늘이 돋았고 두통에 며칠 고생했으니 말이다. 


안녕 성북동 소행성. 너를 알게 되어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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