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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Sep 20. 2023

어른을 만났다

[슬픔의 방문] 저자, 장일호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하고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이 있다. 나보다 멋있으면 언니라고. 그런데 나는 오늘 나보다 3살이나 어리지만 나보다 진짜 언니인 장일호 작가를 만나고 왔다. 편성준 선생님이 얼마 전 진행한 '리뷰로 글쓰기'에 참여하셨던 분께서 장일호 작가의 <슬픔의 방문>이라는 책 리뷰를 써오셨는데, 그 리뷰를 보니 이 책이 보고 싶어 져서 책을 보았고, 그분이 진행자로 나선 작가와의 만남을 신청해서 오늘 두 분을 직접 뵙게 되었다. 강남에서 일정이 끝나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갈아타면서 조금의 설렘을 가슴에 안고 여행하듯 또 그렇게 서울을 가로질러왔다. 


비가 추적추적 오지만, 부츠에 큰 우산이 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게다가 좁은 인도 맞은편에서 오던 청년이 나를 보고는 우산을 높이 들어 부딪치지 않게 비켜주었다. 길에서 마주치면 비켜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 책에 있었는데, 이 분은 그러지 않았다. 먼저 우산을 위로 높이 들어주었고, 나도 답례하듯 바깥쪽으로 몸을 틀어주었다. 왠지 작가를 만나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장일호 작가의 <슬픔의 방문>은 이미 리뷰하기도 했지만, 먹먹한 슬픔을 담담하게 적어내고 이겨내고 그래서 그 슬픔과 고통을 자원화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본 작가는 책의 첫인상과 달리 너무도 유쾌했다. 유쾌함으로 무장했지만, 생각은 진중했고, 이야기는 정성스러웠고, 세상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어른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과연 1인분의 어른 역할을 하는가를 다시 돌아보았다. 혹여 내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제라도 그녀를 만나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고쳐질 수 없는 책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용기와 책임감을 가지는 이야기에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그런 마음으로 계속 글을 써야지 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게 되었다. 이래서 글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나보는구나. 그래서 그의 용기에 기운을 얻거나 위로를 받고, 그의 모습에 나를 투영하며 더 알아가고, 세상을 향한 나의 시선을 더 확장할 수 있구나 싶었다. 


정릉도서관은 작고 아담한 도서관이지만, 이 행사를 보면서 세심하고 깊은 배려가 느껴졌다. 역시 깊이와 퀄리티는 사이즈와 비례하지는 않는 것이 확실하다. 저녁시간 참석한 분들을 배려하여 떡과 음료를 준비한 것도 감동이었지만, 그 보다 청각장애가 있으신 분들도 편하게 참석하실 수 있게 문자 통역을 제공했다는 점이 좋았다. 작은 도서관의 북토크였지만, 진행자의 대본을 정성스레 준비한 것이나, 사인회를 위해 별도의 책상과 필기구를 일사불란하게 준비하는 모습이나, 정성이 가득 느껴지고 감사한 북토크였다. 역시 성북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기 요즘 성북동에 빠져있어서...) 


참, 이명희 진행자분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청명한 목소리에 딕션은 너무 좋고, 스무스한 진행에, 앞으로 북토크든 뭔가 진행이 필요하면 이 분을 꼭 섭외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여기에 슬쩍 늘어놓는다. 하필 그런 전달력과 호소력 좋은 목소리로 "이 북토크가 끝나고 조명이 어두워지고 맥주를 다 같이 한잔 하면 참 좋을텐데요 그렇죠"'라는 그녀의 이야기 덕분에 나는 정일호 작가와의 짧았던 만남이 아쉬워 오늘도 혼자 맥주를 한 캔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덧 1. 작가님이 책에 사인해 주면서 "글 계속 열심히 쓰세요. 계속 쓰세요." 이야기해 주었다. 원래도 열심히 계속 쓸 계획이었지만, 더 열심히 계속 써야겠다. 그리고 나도 그녀가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슬픔이 쓸모 있는 다정한 미래를 발명' 하는 일에 아주 작게나마 동참하고 싶어졌다. 


덧 2. 사인을 해주시면서 직접 가져온 차를 하나씩 책에 붙여주셨다. 아 또 이 얼마나 잔잔한 감동이고 행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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