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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Sep 23. 2023

음악의 콜라주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 기념 부천필 정기연주회를 보고

올해는 라흐마니노프 탄생 150주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울 이곳저곳에서도 라흐마니노프 연주회가 종종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봄에 가을에 있을 연주회를 예매했는데, 그날 취소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여기저기를 뒤지다 보니, 부천필의 정기연주회를 발견하고, 오케스트라 뒷자리이긴 했지만 남은 좌석을 예매했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과 교향곡 제3번 연주를 들었다. 


이번 연주는 기대보다는 약간 더 발랄하고 낭만적으로 시작하였다. 물론 피아니스트 김도현의 정열적인 터치와 웅장한 3악장도 있었지만, 왠지 다른 라흐마니노프 연주보다는 시작과 2장의 낭만이 좀 더 극대화되고 간질거렸던 것 같다. 인터미션을 제외하고 2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연주였지만, 드라마를 보듯 감정의 진폭이 있었던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특징일지 러시아 음악의 특징일지, 한이 곁든 한국인의 정서를 건드는 선율들이라 더 좋았다.


이번 연주회는 난생처음으로 오케스트라 뒷좌석에서 관람하게 되었는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꽤 괜찮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피아노 협주곡이라면 늘 피아노 선율을 가장 집중해서 듣고, 그와 함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를 비롯한 현악기의 선율을 듣게 되는 비중이 가장 컸다. 정열적인 지휘자의 뒷모습을 보았지만, 정확하게 그가 어떻게 지휘를 하는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완전 정반대였다. 비교적 가까이 있던 관악기가 더 잘 들렸고,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는 좀 더 배경음악 같이 이어폰을 잘못 쓴 것 같은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팀파니를 비롯한 타악기가 제일 잘 들렸다. 이 경험이 낯설었던 남자친구는 시작하자마자 본인도 모르게 '풋'하고 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듣는 연주에서 좀 더 보고 듣는 연주로 집중하게 되었다. 


지휘자의 손짓 하나하나에 달라지는 멜로디의 빠르기와 소리의 강약을 직접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으니, 지휘에 따라 나도 따라 숨을 죽였다. 현악기와 관악기처럼 주요한 멜로디를 담당하지 않는 타악기들을 먼저 보다 보니, 그들의 침묵 또한 이 음악을 채우고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흡사 우주의 암흑물질처럼. 모든 악기의 멜로니, 아니 그보다 더 작은 단위 한음 한음은 지휘에 따라 정확하게 그들이 있어야 할 곳에 한점 한점 놓였다. 그게 아무리 제1 바이올린이라 하더라도, 악기 하나로는 절대 전체를 표현할 수 없는, 수십대의 악기가 하나의 곡을 만드는 장엄함을 뒷자리에 앉은 오늘에야 제대로 발견했다. 악보를 넘기는 소리까지 들으며, 지휘자의 손가락이 살짝 오그라들면 동시에 모든 음이 끝을 맺는 것을 직관한 연주였다. 지휘자와 연주자만큼이나 긴장하고 들은 연주였다. 그러니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함께 움직이는지가 궁금하다면 뒷자리에서 한 번쯤 교향곡을 직관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그러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피아노 협연을 이렇게 먼 자리에서 그것도 그랜드 피아노 뚜껑 뒤편에서 듣는 건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다음에 다시 한번 앞자리에서 듣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내년 초 오픈하는 연간 프로그램을 잘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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