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아보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3장. 잘 먹고 잘 자고 잘 놉니다 (4편)

by 니나

나에게는 특별한 카메라가 있다. Rollei 35S라는 수동 필름 카메라다. 서울을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핸드폰이 아닌 무언가에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남겨두고 싶어서 충무로에서 중고로 구매했다. 찍기는 조금 까다로운 편이다. 핸드폰이나 자동카메라에서는 노출이나 셔터스피드, 피사체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잡아주니 지금 보는 것들을 터치 한 번으로 쉽게 남길 수 있다. 사진을 찍는 데에 실은 그런 세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혀 알 필요 없이, 손쉽게 그리고 결과는 멋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내 카메라는 그 모든 것을 수동으로 잡아야 한다.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면 사진은 까맣거나 하얗게 나와 뭘 찍은 건지 알아보기 힘들다. 혹은 피사체가 뿌옇게 나오거나 의도와 다른 곳에 초점이 맞아 내가 보고 담고 싶은 것들을 잡아내지 못한다. 게다가 필름이다 보니, 방금 내가 찍은 사진이 잘 찍혔는지 못 찍혔는지 알 수도 없고, 한 롤을 다 찍고 사진관에 맡기고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보니, 요즘같이 빠르게 변하는 시기에 이처럼 불편하고 느린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 카메라의 진짜 매력이다.


길을 걷다가 저걸 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핸드폰의 노출계 앱을 켜서 적당한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체크한다. 그 후 카메라를 꺼내 방금 확인한 수치대로 세팅하고, 내가 초점을 잡고자 하는 풍경이나 피사체가 지금 내 위치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눈짐작으로 체크한다. 가끔은 적당한 내 걸음으로 몇 미터 앞인지 재기도 한다. 성큼성큼과 살금살금의 중간 정도 되는 보폭으로 ‘대략 6걸음이면, 3미터쯤 되겠네’ 같은 식이다. 아무도 없는 골목의 멋지게 녹슨 대문을 찍는다거나, 전봇대의 얼기설기 어지러운 전깃줄과 하늘을 찍는다거나, 담쟁이넝쿨의 모습을 찍는다는 것 등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좀 덜 지나갈 때의 건너편 건물 모습이나, 건너기 직전의 횡단보도, 아무도 없는 지하철 역사를 찍는 것 등은 난이도가 좀 높다. 설정을 다 해놓고 나면,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거나, 신호가 바뀌었거나 하는 일들이 생겨, 그 상태에서 하염없이 내가 담고자 하는 모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가장 어려운 건 움직이는 피사체다. 풀밭에 앉아있는 참새를 찍고 싶어서 다가갔다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갈색 아지랑이가 찍힌 적도 있었고, 여름방학 숙제라도 하려는 듯 공원에서 곤충채집을 하는 아이들을 운 좋게 잘 담아낸 적도 있었다. 그럴 땐 정말 나 스스로가 뭐라도 된 듯 뿌듯하다. 잘 찍혔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1~2주 기다리다 보니, 남들이 뭐라든 나는 작은 보석들을 찾아낸 기분이다.


필름 카메라는 찍은 결과물을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많지도 않은 현상소를 찾아가서 필름을 맡기는 번거로움도 있다. 게다가 수동 필름 카메라는 찍는 것도 시간과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불편한 이유로 이 카메라를 샀다. 어차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니까. 나 하나쯤은 좀 느려도 되겠지. 내가 회사를 관두고 몇 달 채 되지 않았지만, 회사에는 이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못 알아듣는 경우도 생겼다. 매일매일 텔레비전과 유튜브와 SNS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쏟아져서, 하루 이틀만 등한시하면 ‘그거 몰라?’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빠르게 달리는 열차에서 잠시 하차했다. 그리고 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니 나에게는 그 느린 속도를 지켜주는 느린 카메라가 제격이다. 가만히 서서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핸드폰 카메라나 디지털 자동카메라로 찍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시간의 흐름, 장소의 온도, 바람의 냄새를 느끼고 담아낸다. 어느 순간 나와 카메라의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 들 때, 셔터를 누른다. 찰칵 드르륵 촥. 셔터 소리와 필름 감는 소리와 함께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그렇게 담은 사진은 내 것이 된다. 그리고 그건 그 시간과 장소에 관한 나만의 푼크툼*이 된다.


휘리릭 빠르게 휘갈겨 쓴 메모 같은 글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은 편지처럼 내 하루하루를 적어내고 있다. 빨리 지나가는 열차 속에 몸을 담은 친구와 지인 들이 부럽지 않으려면 지금 잠시 내려 쉬고 있는 내 시간을 잊지 않고 하나하나 다 기억해두고 싶기 때문이다. 빠르게 얻은 것은 빠르게 사라진다. 그래서 느리게 어렵게 얻어내고 오래오래 느끼고 기억하고 싶다. 이 세상은 너무 빠르다. 그래서 소중한 이 찰나를 기억하기 위해 나는 가장 느린 아날로그를 선택했다. 오래 바라보고 깊이 느낄 것이다.



* 푼크툼은 똑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추정ㆍ해석할 수 있는 의미나 작가가 의도한 바를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푼크툼은 「찌름」이라는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경험에서 오는 강한 인상이나 감정을 동반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푼크툼(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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