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행운도 알아보는 자에게 먼저 갑니다 (5편)
나는 새장 같은 작은 오피스텔에 갇혀 살았다. 코로나로 전면 재택근무를 해야 할 때, 엄마와 함께 살던 나는 내 방 한 귀퉁이에 재택을 위한 홈 오피스를 꾸렸었다. 책상과 의자를 사고, 모니터를 설치하고, 인터넷망을 업그레이드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공유기를 추가 설치했다. 나나 엄마나 평생 재택근무라는 걸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노려보며 일하는 게 어색하기도 갑갑하기도 피곤하기도 했다. 나는 일과 생활이 구별이 안 되니 늘 피곤했고, 엄마는 회사 가고 없어야 할 딸이 집에서 삼시세끼를 축내고 있어 피곤했다. 집에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달라는 나의 간곡한 요청에도 한 시간이 멀다고 화상 미팅하느라 닫아둔 내 방문을 슬쩍 열고 ‘밥 언제 먹을래? 커피 줄까? 과일 줄까?’라며 나를 챙겼더랬다. 아무래도 일과 생활을 분리하는 게 좋겠지 싶을 때 마침 남동생이 살던 집을 정리하고 합치고 싶다는 의견을 내보였고, 나는 엄마를 동생에게 부탁하며, 냉큼 길 건너 맞은편에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가까우니 먹고 자는 생활은 원래처럼 하더라도, 일만큼은 별도의 공간에서 집중해야겠다는 나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반독립 생활은 처음엔 컴퓨터와 책과 청소도구와 컵 위주의 그릇, 옷 몇 벌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 의자에 앉아 일만 하나, 잠시 쉬면서 커피도 한잔해야지 싶어 에스프레소 머신과 소파를 들였다. 일이 늦게 끝나 밥 먹으러 가기 애매하면 그냥 간단히 저녁 챙겨 먹고 쉬고 자다가 다음날 업무를 계속하다 보니 냉장고에 먹을 것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침대와 침구가 생겼고, 이어 침구용 청소기와 온수매트가 생겼다. 상비약과 체중계, 공기청정기, 선풍기 같은 생활용품 들이 하나둘 늘어나더니, 계절이 몇 차례 바뀌고 나선 철 지난 옷 박스마저 한쪽 구석에 쌓이게 되었다. 이쯤 되니 사면이 짐으로 쌓여 답답하고 좁은 이곳이 감옥 같기도 했고, 늘 무언가를 헤쳐가며 물건을 찾다 보니 수풀 우거진 정글 같기도 했다.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며 종일 씨름하다 해가 지면 한 발자국 옆에 있는 소파에 주저앉아 맥주 한두 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친 노동자의 삶이 계속되었다. 재택이 아니라 1인용 사무실에서 24시간 먹고 자면서 노예처럼 일하는 생활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엄마 집으로 다시 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 머무를 수는 있었어도, 다시 이 작은 공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복잡해 죽겠다고, 속이 터진다고, 하루가 멀다고 남자친구와 통화 중에 분통을 터트렸다. 누가 그러라고 떠민 적도 없었지만, 착취당하듯 착취하듯 노동시간에 내 모든 걸 다 쏟아내는데, 이렇게 작고 복잡한 방에서 일하는 건 부적절했다. 그래서 그 시절 틈만 나면 부동산 앱을 켰었는데, 맘에 드는 집은 내 능력 밖이었고, 내 능력이 닿을만한 집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이사 갈 바엔 여기서 좀 더 버티고 아껴서 더 크거나 좋은 집, 혹은 살고 싶은 동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물쭈물 망설이는 동안, 내 손이 닿을 만한 집들은 점점 더 비싸져 우주 밖으로 멀어졌다. 주변은 하우스푸어가 되더라도 과감히 저지르는 무리와 나처럼 기회를 놓쳤다고 자책하는 소심한 자들, 그렇게 대략 두 분류로 나뉘고 있었다.
이 방에서 답답했던 재택근무 시간을 견뎠고, 글로벌 정리해고 메일을 확인했다. 형태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목구멍으로 올라와 엉엉 울어버리기도 하고, 장을 보고 나를 위한 식사를 준비해 혼술과 함께 위로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물건을 정리하고, 그러다 밤이 되면 차를 우려내고 나무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였다. 나무 한쪽이 까맣게 변하고 하얀 연기가 울렁이다가 희미해지는 것을 눈으로 좇고 향을 맡았다. 그러면 그날 밤은 잠이 잘 왔다. 작지만 안락하고 편안한 누에고치 같은 집이 되었다. 글을 쓰다가도 일어나 한두 걸음이면 닿을 거리에 열어보고 싶은 책이 있고, 불을 끄고 간접조명을 켜면 조용히 하루를 돌아보며 침잠하기 좋았다.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곳엔 넓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있었고, 한강이 보이는 곳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사할 집의 인테리어를 알아보느라 고민인 사람도 있었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나도 넓은 집으로 가면 편하겠지? 한강이 보이는 집은 가슴이 탁 트이겠지? 인테리어가 막 된 새집은 참 예쁘겠다.라는 상념에 잠겼다. 그러나 밤이 늦어 모두 헤어지고 다시 작고 안락하고 조용한 누에고치 속으로 들어오니 그런 생각들은 희미한 연기처럼 사라지고, 오전에 쓰다만 글이 생각나 노트북을 펼쳤다. 이곳은 조금 고독하고 외부로부터 단절되어 편안하다. 하지만 쓸쓸하거나 슬프거나 답답하지는 않다.
내 상황이 달라지고 스며들 듯 내 집을 좋아하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얼마 전까지 관심 있었고, 여전히 내 주변 사람 들은 신경 쓰는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가령 평수 큰 집, 사는 동네, 타고 다니는 차종, 입은 옷과 가방의 브랜드, 남편이나 와이프의 직업과 벌이, 회사와 연봉, 직급. 그런 것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존재에 대해 무지하다가,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잠시 인지했다. 사람들은 거울이 되어, 보는 순간 내가 보이고, 내 상황이 보이고, 나를 사람들과 비교했다. 그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것들은 울렁이는 연기처럼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존경하는 선배는 요즘 내 소식을 듣더니 ‘땅에서 발은 떼지 마라’라고 했는데, 나는 이러다 훨훨 날아 달나라까지 갈 지경이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승진하면 더 행복할 줄 알고 열심히 애써서 결국 획득했었지만, 그 과정도 그 이후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승진이 확정되어 소식을 알게 된 며칠간 잠시 달콤한 성취감과 행복감이 들었고, 축하받느라 으쓱했고, 새 명함이 뿌듯했지만, 그보다 더 긴 시간 애쓰느라 내가 다 타 없어져 버렸다. 지금은 작은 성공을 자주 맛보는 것이 좋다. 고전 한 권 다 읽기, 쌓인 설거지 자기 전에 하기, 계획한 운동 완료하기. 그리고 결과는 물론 과정도 즐거운 것들을 더 찾아보고 있다. 글쓰기, 산책하기, 사진 찍기.
나는 누에고치 같은 작고 아늑한 집에 산다. 이곳에서 일어나 요가나 스트레칭하고 글쓰기를 한다. 회사에 가지 않으니 종일, 이 좁은 곳에서 식사도 하고 책도 보고 다시 잠이 든다. 여기는 딱 한 명의 고독과 안락과 평화와 만족만을 제공한다. 그러니 나에게는 딱인 곳이다. 더 누구를 들일수도 없고 다른 곳에서도 이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울화통 터지던 그때보다 짐이 더 많아져, 소파에도 책을 쌓아두고 있고, 서랍이나 수납공간에 들어가지 못한 물건들, 예를 들어 엄마가 박스째 준 사과즙, 여행 캐리어, 체중계, 아령, 가야금 같은 것들은 복도와 소파 옆을 차지하고 있다. 그 물건들은 이곳을 더 비좁게, 그리고 아늑하게 만든다. 취향과 생활이 진득하게 묻어있어 내 살냄새가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