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지름길
나이가 들어갈수록 결이 맞는 사람을 찾게 되고 결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어울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학창 시절에는 그다지 결이라는 부분을 신경 쓰지 않고 특정한 취미만 공유하거나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살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결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먼저 체크하고 판단하게 된다.
짐작해 보자면 어린 시절에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으면 다른 요소를 배제하고도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서는 학교와 비슷하게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다고 하더라도 사적으로까지 만나는 친구를 사귀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성격이 외향적이고 많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향적이고 조심스러운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과 어울리기를 선호하기에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결이라고 하는 것도 단순하게 한 가지의 특성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가지 분야에 대해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예컨대 A라는 사람은 대화의 결이 맞는 사람을 원하고 B라는 사람은 취미의 결이 맞는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사실 소통에 있다. 즉 대화의 결이 가장 중요하다. 소통이 쌍방으로 원활하게 되지 않으면 일단 유대관계 생성조차도 성립이 되지 않는다. 대화가 통하면 그때부터 취미를 공유한다거나 여행을 함께 가면서 취향을 공유한다거나 음식이나 문화생활 등 모든 측면에서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출발점이 소통이다.
똑같이 학창 시절에 결을 따지지 않고 공통분모만 있으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공통된 하나의 주제만 있어도 하루 종일 대화가 가능하고 토론도 가능하며 그런 과정에서 의견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거나 하나의 공통된 주제는 소통을 하나로 모으기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다만 한 번 사귀었던 친구가 영원한 친구가 되리라는 법은 없다. 하나의 공통분모로 뭉친 친구라고 할지라도 성장하면서 생긴 취향이나 추구하는 인생 방향에 따라 더 깊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모르는 사이처럼 지내게 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이런 점들이 사회에서 쉽게 결이 맞는 사람을 찾기 힘든 요소로 작용한다. 같은 회사에서, 모임에서, 단체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도 기본적인 대화는 나누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도 표정은 웃고 있는데 속으로는 상대방을 탐색하는 시간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어울려도 괜찮을지 좋은 사람일지 나쁜 사람일지 파악하려 애쓴다.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결이 맞는다는 것은 결국 대화의 톤이 맞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궁금증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을 알아가는데 목적이 있고 처음부터 상대방과는 맞지 않는 톤으로 다가오려 한다면 상대방에게 첫인상이 좋지 못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무조건 맞추려 하는 이타적인 태도도 좋지만 그러다 보면 금방 들통이 나기도 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하면 상대방은 자신을 감정 쓰레기통처럼 일방적인 소통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상대방의 이미지는 박살이 나고 반대로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사람이 역할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면 ‘너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라며 조금은 이상한 사람 혹은 변해버린 사람 취급을 하기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연인관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대방에게 헌신하는 사랑의 태도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이고 내가 가진 것을 절실하게 줄 수밖에 없는 마음은 언젠가 상대방도 내가 줬듯이 조금이라도 돌려주는 순간이 있을 것을 기대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좋아서 했던 말과 행동일지라도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있다면 비극이 일어나기 쉽다. 100번을 잘해주다가 한 번 상대방에게 바란다면 상대방은 마음이 변했다며 되려 화낼 수도 있다. 굳이 꼭 연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람대 사람과의 관계는 마치 쌓아 올려진 모래성과도 같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쌓아 올린 유대감이라는 성이 무너지는 것은 손바닥을 펼쳐 휘두르는 것만큼 쉽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난다. 나는 모래성을 쌓아 올리면서 꼭대기에 별을 만들고 싶었지만 상대방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뾰족한 성꼭대기에 바람에 휘날리는 멋진 깃발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면 처음에 성을 쌓자고 약속하며 유대관계를 만들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모래성의 마지막 화룡점정을 위한 순간에 깃발과 별이라는 대립 관계를 형성한다. 한쪽이 양보해서 평화적인 결과를 만들었다면 정말 결이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어쩌면 짧은 인생동안 함께할 소울메이트를 만난 것과도 같은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보통은 서로의 대립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기싸움이 이루어진다. 결말은 둘 중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래성을 향해 팔을 휘두르며 파괴가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쌓아 올릴 엄두도 안 날 만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고 서로는 서로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모멸감을 느껴 심지어는 과거에 함께 했던 행복했던 시간들 마저 낭비라고 여기고 부정하게 된다.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과거에 대한 부정은 결국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상대방이 내가 원할 때 양보를 해주지 않음에 대해서 더 나쁘다고 여기긴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때 내가 조금 양보할걸’ 같은 후회가 밀려든다. 그럼에도 이미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복구하기란 쉽지 않다. 혹여 서로의 마음이 통해서 재건축을 시작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살얼음판 위에 모래성을 짓게 된다.
신이 아니고서야 사람을 단번에 파악하는 도구나 능력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상호 간에 긴밀한 소통을 진행하며 천천히 알아가는 것이다. 다만 유의해야 할 점은 처음부터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도 변하지 않음이 당연하듯이 시작부터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남에 있어 두려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자신과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없다고 이미 단정 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연은 이성이든 동성이든 관계없이 설레고 물음표가 가득한 선물 상자 속에 있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 강요하지 않고,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모여 나와 상대방을 이어주는 길이 곧 결이 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