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맑은 물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삶

정수윤세

by 정수윤세

<깊고 맑은 물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삶>

지금의 나에겐 가장 의미 있고, 하고 싶은 일이자 되고 싶은 삶의 방향이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지 못해서 안달복달하며 살아온 과거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내가 되었다는 마음가짐을 내가 온전히 나의 힘으로 증명해 내려는 의미를 지닌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 이곳에 있다. 누구에게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받았으니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받았던 마음을 다시 그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이란 정말 솔직하게 ‘내가 과연 해낼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했다.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직접해 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듣고 후기를 찾아보더라도 결국에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3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을 결심하고, 3주간의 제주로 여행을 떠났다. 미지의 그곳에 내가 찾는 무언가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도 그런 것은 없었다. 사실 눈에 보이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애초에 찾겠다는 마음 자체가 모순이었다.

혼란스럽던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길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더 깊어지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이유는 모든 상황이 떠오를수록 내가 잘못한 것만 떠오르고, 자기반성에 이어서 자책으로 이어졌다. 인생의 숨구멍을 찾기 위해 찾아온 제주에서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나를 가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집중되지 않는 정신을 최대한 집중하려 했고, 수평선을 바라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저곳에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두커니 해수욕장에 앉아 반나절이 지나도록 눈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또한 저들과 같은 사람일진대, 왜 웃지 못하고 있을까? 무엇이 대체 나를 가두고 있을까?라는 고민이 생겼다. 유튜브와 책에서 일기를 써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게 뭐 도움이 되기나 하겠어?’라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마음의 일기라고 명명하고 아침에 일어난 즉시 잠에서 깨어나는 동시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전날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 자고 일어나 보니 어떤지 솔직한 감정을 써 내려갔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쓰던 노트가 지금은 10권이 넘었다. 물론 아무도 보여줄 수 없는 내 인생의 역사서다.


비속어가 섞이진 않았어도 평소에 잘 입밖에 않는 단어들도 서슴없이 모두 기록했다. 적어도 일기장만큼은 내 마음을 100% 투영해서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매우 습관적으로 일기장을 편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술을 마셨어도,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무조건 쓰고, 못 쓰는 날은 아침에 일어나서 전 날의 일상과 생각을 기록한다.

일기를 쓰다 보니 펜으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답답했던 감정들을 글로 녹여내다 보면 마치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평온이 찾아왔다. 그 단순한 감정에 매료되어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글이 나아가서 어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소수더라도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등장해 아주 잠시라도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고, 의지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전에 만나던 연인에게 손 편지를 가끔 써줬던 적이 있었다. 이유는 딱히 없지만 그냥 아날로그가 좋아서 손 편지를 써주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은 이렇게 말했었다.


“너의 편지는 꼭 네가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마음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해서 의심했다. 이 사람이 지금 나에게 편지의 내용을 조리 있게 쓰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부정적 감정이었다. 최근에도 마음에 둔 사람에게 길고 긴 편지를 한 번 쓴 적이 있다. 처음에 반응은 별 다를 게 없었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난 뒤의 피드백은 내용이 너무 슬프다고 했다. 물론 이건 그 사람이 처한 상태나, 감정이나, 글을 보며 느끼는 공감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보게 됐다.


편지처럼 써내려 가는 나의 작은 글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마음이 지금 내가 이곳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가는 이유다.


솔직히 엄청나게 특별한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 자신도 알고 있다.

특색 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경이로운 감정이 마음속에서 피어나곤 한다.


그럼에도 그들도, 나도 모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자각하며 손가락에 힘을 주어 키보드를 누른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

일상에서 마주하는 시각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나의 생각들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가 닿을 거라는 막연한 설렘을 안고 가는 길이다.


사람이기에 팔리는 글을 써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보다 큰 마음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하듯이 나의 글이 한 번 읽고 나면 그 사람의 인생 어떤 순간에서건 불현듯 떠올라 순간의 마음속에서도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너무나 만족스러울 것 같다.


만약 내가 팔리고 자하는 글을 쓰려고만 노력했다면, 사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 같다. 진작에 나는 재능이 없다고 여기고 현실에 다시 순응하며 사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내가 이 지구라는 곳에 태어난 이유를 조금이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다.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나로서 그저 나인 삶

나로 인해 위로받고, 따뜻함을 느꼈다고 말해주는 사람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일


그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여긴다.

물은 흐르고 흘러 결국 흐를 곳을 찾아간다.


한 방울의 물이 되어 따뜻한 이의 마음을 살며시 적시며 자국을 남기는 글이 내겐 의미가 된다.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靜水潤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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