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꽤 많이 듣게 되고, 사용하게 된다. 그동안 그 말의 속내를 들여다보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고 살았지만 최근 한 영화를 보면서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 개봉한 <어쩔 수가 없다>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가볍게 보러 갔다가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나오게 되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며 광고는 절대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적 판단임을 알려드립니다.)
영화의 시작은 단란한 4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 이루었다는 주인공의 한마디로 시작이 된다. 하지만 회사 경영방침 상 기존에 재직하던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실패하고, 다시 동종업계에 발을 들이려 하는데 본인보다 스펙이 뛰어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본인보다 뛰어난 사람을 세상에서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과정에서 인류애가 피어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도 비치지만 결국에는 계획을 비교적 성실하게 실천해 간다.
과연, 나의 행복을 그리고 내가 책임지는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해도 되는 걸까? 강한 의문이 들었다.
나도 사람이고, 다른 사람도 사람이고, 저마다의 개인적인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일진대, 어떤 권리로 남의 행복을 짓밟을 수 있는지 그것부터가 의문이었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주관적인 결론으로 ‘어쩔 수 없다.’라는 단어는 어차피 나는 그 일을 할 것이거나 혹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마음을 타인이 아무리 다른 말로 회유해 봐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오직 자신만의 합리화를 위한 핑계처럼 느껴졌다.
물론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 경우라면 다르다. 하지만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결론의 이유는 그것이 아니라 오직 이기적인 마음 하나로 남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안하무인 하며 합리화를 통해 오직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가니 ‘어쩔 수 없었어’라는 쉬운 단어 한마디조차도 신중하게 되었다. 과연 나라고 그런 합리화를 안 하고 살았을까? 그리고 또 합리화를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과거를 사는 존재가 아니고, 미래를 사는 존재도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과 순간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고유의 작품이다.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떻게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점을 알기에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원하기보다 나부터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사람들이 말하는 영원이라고 하는 건 사실 어쩌면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일지 모른다. 어떤 스님이 말씀하시길 사람이 현재를 살아가는 걸 느끼는 순간은 자각도 하지 못하던 호흡을 깊고 길게 내쉬는 그 아주 짧은 몇 초의 순간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스님의 의견에 적극동의 하는 바이다. 사람의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떻게 변해갈지 모른다. 사람이 아무리 통제하려 해도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나게 되어 있고, 누구나 공평하게 하나의 생명을 갖고 살아간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일이 의미가 없듯,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도 사실 크게 보면 의미가 없다. 오늘 길을 가다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염세주의자의 시선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 실제로 그렇다.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많은 명성을 쌓더라도 결국에 결말은 한 줌의 재가 되어 흙이 되어 사라진다. 물론 살아가는 동안 쌓은 업적에 비례해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교훈이 되어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0.1%의 위대한 사람들보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99.9%의 일반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현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당연히 그중에 나도 있다.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누구보다 당당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고 보인다. 물론 일련의 과정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절대로 안될 일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남들의 현재라는 그림에 상처를 입혀서는 절대 안 된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타인들과의 만남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내가 상처 입지 않기 위해서는 남에게 상처 입히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찾기 위한 여정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필수적인 일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남들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마음 편하게 현생을 향유하며 사는 삶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물건도 아니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그 어떤 막연한 추상적인 것이다.
행복은 언제나 이미 마음속에 존재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의 보물을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남들이 가진 것만 보고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이미 가진 것을 나는 왜 갖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할까?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해서이다.
다른 사람들 역시도 나를 보며 부러워하는 점이 무엇이든 있다.
부디 마음속의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을 발견하고 마음과 몸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득한 지금 현재의 인생을 향유하길 바란다.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靜水潤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