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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異香)

그림자 그리고 향기

by 정수윤세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면 이별은 나에게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아주아주 멀리에 있는 존재로 어쩌면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일종의 마비상태가 된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이별의 순간은 다가온다.


어느 순간 어느 때에 마주쳐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은 여러 차례의 겪어 본 사람도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이별을 경험할 때는 과거의 경험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정의 토네이도 중심에서 온갖 도움들을 뿌리치고 강한 감정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에서 당장 도움이 될 만한 기억을 찾아내려 애쓴다.


일반적인 이별이라면, 사랑하면서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단점들이 느껴지고 그런 거리감은 괴리감이 되어 마음의 거리가 물리적 거리로 반영되어 이별이 된다.


다만 사별의 경우에는 다르다. 아직 그런 경험을 해 본 적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연대하던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고통이란 현존하는 어떤 단어로도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정말 너무나도 마음도 맞고 취향도 맞는 사람을 만나 백년해로하며 함께 인생을 살아갔다 하더라도 이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든 찾아온다. 같은 날 같은 때에 인생이라는 항해를 마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별의 순간은 의도적으로 피할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생애의 이별 순간은 우리는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우리는 아무리 격렬히 저항해도 이별과 친해질 수 없고 그렇기에 현재의 사랑을 어떤 식으로든 지키고 싶어 한다.

사람은 누군가를 위한 힘을 발휘할 때 가장 강한 힘을 발생시킨다. 방법이 어떤 것이든 방법이 현명하다거나 그렇지 못했다거나 판단할 수 없다.

어느 외국의 사례에선 농장에서 일을 하던 남성 외국인이 트랙터에서 내리던 도중 미끄러져서 트랙터에 깔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발견한 사람은 그의 딸들인데 모두 10대의 어린 여자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트랙터에 깔린 아버지를 구해내려 힘을 모아 트랙터를 들어 올려 아버지를 구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이 발생한 것이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살리겠다는 마음이 만들어 낸 플라시보 효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이렇듯 우리는 사랑을 지키는 힘이 있다.

자신의 힘으로 사랑을 지킬 수 없는 때가 오면 우리는 이별을 선택하고 최대한 태연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절대 태연할 수 없는 일임에도 그 순간만큼은 가장 뛰어난 연기자가 된다. 감정의 토네이도에 갇혀 살다가 힌트를 발견하고 이별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엔 항상 사랑이 시작된다.


모순은 이별에 완벽한 치유법은 없는데도 그렇게 느낀다. 감정의 토네이도에 휘말려 상처 입은 당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생긴다.

이럴 때 아주 큰 문제를 만들어내는데 상처는 완벽히 다른 타인에게서 전에 만났던 사람을 투영한다. 마치 일정한 틀에 전에 만난 사람을 가위로 오려내듯 그만큼을 오려내고 다시 새로운 사람에게로 그 잣대를 들이민다. 오차범위는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오차범위가 커지면 자신과의 취향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한다.


이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여자라고 같은 사람이기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는 마음의 크기만 다르지 남자든 여자든 첫사랑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첫사랑에 대한 틀을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비슷한 사람에게 틀을 투영시켜 그중에서도 장점만을 가진 최선의 사람을 만나려 노력한다.

연애를 해본 횟수만큼 틀은 변형되기 마련이다. 여러 이별을 겪은 뒤라고 한다면 틀의 재질이 종이가 아닌 철과 비슷한 재질이 돼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진짜 나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당신이 노력한 것들이 무색하게 그 사람은 당신의 모든 틀을 녹여버릴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리 강철 같은 틀을 가지고 있더라도 용광로를 만나면 자연히 녹아들게 된다. 그 순간에 우리는 강렬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용암은 타 오를 땐 사실 아주아주 뜨겁지만 식어서 굳어지면 돌로 변한다. 사랑과 아주 유사한 모습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둘의 사랑은 활화산처럼 아주 뜨겁다가도 차갑게 식어버리면 돌이 되고 색깔마저 변형된 상대를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다시 전의 돌이나 용암처럼 뜨겁던 시절의 색깔을 떠올리고 냄새를 떠올리고 새로운 사람에게서 그 모습을 찾아낸다. 찾지 못한다면 포기한다. 사랑의 기준이 한번 세워지고 나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러니하게 뜨겁게 사랑했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대상이 달라지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럴 순 없다. 다른 사람과의 다시 뜨거운 용암과도 같은 사랑을 원한다면 기준의 잣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손에 쥔 틀을 내려놓고 뜨거운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느낄 때 그런 사랑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가짜 사랑을 가지고 사랑이라 이름 붙이며 목적을 갖고 다가오는 사람도 여럿이 있을 것이지만 굳건한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구별해 낼 눈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전에 만났던 사람의 모습과 향기를 찾지 않아도 된다. 과거의 사랑이 그렇게 미치도록 아름다웠다면 무슨 수를 쓰든 지켜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키지 않은, 지켜내지 못한 이유는 당신이 아름다웠던 그때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해 두었기 때문이다.

예쁘게 포장된 추억들은 마음속 창고에 고이 보관해 두면 된다. 꺼내고 싶을 땐 아무도 모르게 꺼내어 보면 된다.

남에게도 당신만의 예쁜 추억이 똑같이 예쁘게 보일 것이란 착각을 거두어야만 한다.

우리는 ‘나’ 중심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단 하나의 존재인 ‘나’가 수도 없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그들 모두 각각의 예쁜 기억의 상자들을 가지고 있다. 나의 상자와 다른 모양 다른 색깔이라고 해서 타인이 그것을 예쁘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없으며 각각의 마음들이 예쁘고 소중하기에 추억 속에 가두고 그때의 마음, 그때의 향기, 그때의 모습, 그때의 기억들은 그때 존재했기에 소중했고 너무나 예뻤던 과거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돌아가고 싶을 만큼 예쁜 추억임에는 분명함에도 현재와 미래에는 다신 존재하지 않을 마음의 상자다. 그러니 상자에서 내 눈에 아주 예쁜 돌을 꺼내어 상대의 것과 비교해선 안 된다. 무의식에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재앙의 시작이다.


재앙은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해 몸을 불려 가는 괴물 같은 존재다. 무의식이 생각 안에서 갇혀 입 밖으로 꺼내지지 않는다면 재앙은 몸을 불려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과 의식은 연결되어 있고 사람은 실수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실수가 재앙의 시작 버튼인 셈이다. 과거의 무의식이 자신도 자각할 수 없는 새에 팔꿈치의 옆으로 굴러와서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누르는 순간 시작된다.


예를 들면 ‘전에 내 이성친구는 안 그랬는데’라든가 무의식적으로 이름을 불렀는데 틀렸을 때 상대방이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면 처음엔 장난으로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오래갈 것이고 시간이 흘러서 잊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또 다른 재앙이 발생했을 때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무의식이 만들어 낸 재앙은 의식이 되어 세상에 만들어지면 갈등의 순간이 올 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무의식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물론 사람이 어떻게 무의식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가지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의식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첫 번째는 비교하지 않아야 하고 두 번째는 현재의 대상과의 상황에 집중하기이다. 아무리 혼자 있을 때라도 마음에 비교하는 생각들이 생겨나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재단하려 든다. 그리고 승자와 패자를 가린다. 상대방이 알아챌 수 없다고 여기는데 우리는 말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표정과 뉘앙스로도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불편한 마음은 전이가 된다. 전이된 불편함은 상대방에게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피드백을 하도록 만든다. 사실은 그렇지가 않음에도 말이다. 현실에는 없는 과거의 대상과 상대방이 싸우는 상황이 되지 않게 비교는 머릿속에서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무의식으로 가져가지 않을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상대방과의 상황에 집중하기인데 이건 비교적 쉽다.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할 때는 해야겠지만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꼭 질문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나타내는 표면적 증거들이 있고 그것을 경청하면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카페 투어를 좋아한다면 예쁜 카페를 찾아서 보여주고 같이 가자고 하는 자체로도 흘려 말했던 나의 취향을 기억해 준다는 사실에 상대방은 감동할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고 과거의 그 사람은 머릿속에 나타날 틈조차 제공하지 않음이 무의식으로 들어가지 않고 평화를 지킬 방법이다.


현재에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고 있다면 꼭 기억했으면 하는 사실은 전적으로 상대방을 위할 줄 알아야 하고 상대방을 위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온전한 존중’을 해주는 것이다.

받기만을 바란다면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고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 속의 나라가 된다.

한 번뿐인 인생에 사랑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싶다면 무의식의 창고에서 뛰쳐나와 창고를 통제하는 주인임을 다시 깨닫고 몸으로 느껴야만 한다.


다른 이에게서 이향(異香)을 찾는 일을 멈추면 느끼게 될 것이다.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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