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어린 로레인 Mar 03. 2023

내가 남편에게 휴가를 주는 이유

부부라는 다름의 시너지



한 회사에 꽤 오래 근속하고 있는 남편은 3년 주기로 안식휴가를 얻는다. 길면 한 달, 짧으면 2주의 재충전 시간을 갖게 된다. 바쁜 업무기본 휴가도 해를 넘기며 쌓여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더 긴 휴가를 쓸 수도 있지만, 남편은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주어진 휴가만 잘 쓰고 싶다고 했다.


2월은 참 이슈가 많은 달이다. 큰 아이는 어린이집 생활을 마무리하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준비하는 시간이고, 남편에게는 안식 휴가를 통해 40살에 접어들 준비를 하는 시간이고, 나에겐 3월부터 닥칠 일상의 변화에 소프트랜딩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 둘째는 아무렴 행복하게 보내면 그만인 시간이고 ㅎ


남편의 안식휴가는 아이의 어린이집 졸업식날을 시작으로 아이 입학식날까지 참여할 수 있는 스케줄로 정했다. 딱 2주의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시간을 알차게 쪼개 써야 했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는 싱가포르 여행,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와 돈독해질 수 있게 데이트까지 하려면 남편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엔 조금 타이트했다. 그럼에도 안식 휴가의 목적을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다시 회사에 복귀하기 전, 그의 몸과 마음이 산뜻하게 회복되길 바라기 때문에.


남편이 혼자 휴가를 떠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4년 전, 안식 휴가 때도 그는 스스로에게 몰입할 수 있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개인의 시간을 원했다. 그럼에도 두 아들을 독박으로 케어할 아내에게 미안해서 숙소 예약을 뭉그적거렸다. 그때 나는 걸크러쉬에 빛나는 모습으로 숙소를 직접 예약해 남편에게 체크인 정보를 건네줬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하나투어 앱을 만지작 거리다가 끄기를 반복하는 남편을 대신해 나는 즐겨찾기로 숙소 3군데를 담아놓고 최종 선택을 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남편은 아이의 입학식 후, 맥치킨 버거를 먹고 싶다는 아이와 함께 버거 데이트를 한 뒤에 미리 쌓아둔 짐들을 챙겨 유유히 여행을 떠났다. 달려가는 차를 바라보니, 매번 보는 차 뒷모습이 오늘따라 날아가는 것처럼 가벼워 보였다.


우리부부는 자주 주말마다 반나절씩 각자의 시간을 갖도록 허락했다. 그래서 짬짬이 일상에서 틈을 주려고 했지만, 그정도의 쉼은 발만 담구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몸과 마음이 충분한 회복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고작 며칠이지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애씀을 벗어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업무에서도 Off, 육아에서도 Off 하는 시간을 통해 남편이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마주하고 건강하게 Next를 그려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숙소에 도착해서 구석구석 찍어 보내면서 남편은 상기된 얼굴과 목소리 톤이 다 그려지게 메시지를 남겼다. 남편이 오롯이 여행에 집중하도록 되도록 전화나 톡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아빠가 보고 싶은 아이의 보챔도 다른 놀이로 유도하며 남편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게 매너라고 생각해서.  


그가 보내는 여행을 다른 공간에 있는 나도 함께 하는 듯이, 설레고 기대가 된다. 떠날 때는 지쳐있던 남편의 눈빛이 돌아올 땐 어떨까? 중간중간 카톡으로 애정표현을 날리는 남편을 보니 생기 어린 목소리가 느껴져서 참 감사하다. 충분한 쉼으로 채워진 쉼표의 시간이 그가 더 멋지게 다음 걸음을 내딛는 비타민이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보, 오늘도 출근해 줘서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