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한 지 10년, 나 좀 쉬어도 될까?

번아웃된 워킹맘의 회복 일기

by 진심어린 로레인


2011년 1월 3일 월요일

10년 전, 내 인생 첫 출근 날이었다. 특별한 사내 문화를 가진 광고회사로의 출근은 남달랐다.

“새해 첫 출근 드레스 코드는 레드” 지령처럼 내려온 연락을 받고 주말에 옷을 미리 준비해야 했다.

새로 산 빨간 원피스를 입고 새로운 환경에 첫 발을 내딛던 스물네 살의 나. 떨리고 설레던 그때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2021년 1월 18일 화요일

세 번째 회사에서의 마지막 출근일이었다.

그날의 출근 룩도 레드였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지만,

마지막 모습까지 칙칙해 보이고 싶지 않은 일말의 자존심이 강렬하게 붉은 스웨터를 꺼내게 만들었다.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소진됐다.


일은 아내로서, 엄마로서가 아닌 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을 놓지 않으려 그리도 부단히 노력했는데…

이제는 몸도 마음도 손쓸 수 없는 번아웃 상태가 되어버렸다.


10년 동안 일하면서 웃픈 일도, 이불킥을 날릴 일도, 속상한 일들도,

직장인이라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1년, 3년, 5년 차 ‘슬럼프’도 겪어왔다.


그럴 때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는가 자문했다. 여러 방법을 동원해 막힌 듯 보이는 터널을 빠르게 벗어나려고 했다. 멘토를 찾아가 조언도 구해보고, 자기 계발 서적을 쌓아놓고 읽고, 공모전에 도전해 실력도 검증해보고,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홀로 사색의 시간도 가졌다. 나름의 처방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일에 희열을 느끼는지 탐문하며, 하나의 직업에 가두지 않고 나만의 업을 정의하면서 큰 그림을 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아우성치듯 온몸 곳곳이 아파왔다. 한의원, 피부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수많은 병원들을 전전하느라 바빴다. 몸은 보이는 마음이고, 마음은 보이지 않는 몸이라고 했던가? 몸이 무너지니 결국 마음에 가득했던 일 욕심도 꺾여버렸다.


처음 겪는 완전한 번아웃은 마치 펑크 난 타이어 같다.

저 멀리 보이는 종착지를 보며 주유소가 보일 때마다 기름은 가득 채웠는데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다. 타이어가 터진 것이다.


서른넷. 일한 지 10년. 두 아들 엄마.

나는 지금 타이어가 터져 정비소에 입고된 차다.

일을 대하는 내 자세도 점검하고, 나보다 남들의 시선에 휘둘려 위축된 내 마음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

40대, 50대가 돼서도 더 건강한 엄마로 아이들 곁에 있고 싶은 간절함도 생긴다.


얼마 전 차의 타이어에 못이 박혔을 때 신랑이 그렇게 말했다.

“간단하게 지렁이만 넣어도 얼마간은 괜찮아. 그래도 안전하려면 곧 갈아야지. 어차피 갈 때도 됐고”


그렇다.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 갈아줘야 한다. 나도 지금 reboot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아껴주지 못했던 지난 10년을 만회하며, 최고로 밀도 있는 안식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지금은 엉클어진 실타래처럼 보이는 내 인생, 하나씩 하나씩 풀어갈 것이다.


어느덧 퇴사한 지 6주 차,

긴장이 풀리면서 잔병치레를 하느라 힘들었지만,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겠다는 목표대로 나만의 소소한 리추얼들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삶을 재정비한 후에는 더 지혜롭게 일하고 순간순간들을 풍성하게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타이어를 다 갈면 승차감도 좋아지려나? 낙관적으로 기대해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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