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거울 속 ‘나’에게 건넨 한 마디
번 아웃된 워킹맘의 회복 일기
안식의 시작은 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신랑의 배려로 2박 3일 일정의 송도 센트럴파크 근처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센트럴파크 야경, 깔끔한 오피스텔로 가성비 좋은 숙소였지만, 무엇보다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할 생각에 떠나기 전부터 이미 200%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여행의 첫날,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여유롭게 한 손에 하겐다즈를 들고 영화를 보는데, 자꾸 시선이 TV 옆 거울에 닿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도 어색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짝사랑의 상대를 훔쳐보는 것처럼 자꾸만 ‘나를’ 관찰하고 싶어 졌다.
유독 거울이 많은 그 숙소에서 나는 ‘나를’ 제대로 마주할 기회를 가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최근 내가 거울을 여유롭게 본 적 있었나? 매일 전투적으로 아이들 등·하원 시키고, 부리나케 출퇴근하는 일상의 연속. 시간의 틈을 갖기 어려웠던 나에게 여유롭게 거울을 보는 건 사치였다. 스무 살 자타공인 셀카쟁이었던 내가 어느 순간 핸드폰 사진첩에서 내 사진을 찾기 힘들어졌으니...
그건 아마도 나를 놓치고 있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드디어
거울 속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너 참 오랜만이다”
그사이 더 올라온 기미에, 못 보던 흰머리도 몇 가락.. 여전한 짝 쌍꺼풀;
거울 속 내 얼굴을 이리저리 관찰하면서 눈에 한 번 힘도 줘보고, 나에게 환한 미소도 지어줬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 거울 속에 비친 ‘나’와 이런 행동이 낯설지만 좋은 ‘나’ 즉, 메타적인 시선이 함께 느껴졌다. 세수하느라 얼핏 얼핏 쳐다보는 형식적인 거울 보기와는 달리, 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그간 외롭고 서럽게 방치되어 있었던 ‘나’를 다독이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래, 내가 나를 더 예뻐해 줘야겠다. 너무 무심했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여러 종류의 거울들을 결제했다. 이제라도 시간이 나를 어떻게 스쳐 가는지 제대로 알고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렇게 고개만 들면 거울이 보이도록 집안 곳곳 거울을 달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서도, 서랍에서 양말을 꺼내다가도, 무심코 방문을 열다가도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봤다.
거울을 수시로 보기 시작한 7주.. 그동안 달라진 변화가 있을까?
시선이 자주 거울에 닿는다고 해도 그리스 신화 나르키소스처럼 자아도취될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일상은 바쁘고 할 일은 많으니까. 일상의 공간에 거울이 많아짐으로 종종 내 멍한 표정을 보고 흠칫 놀라기도 하고, 아이들과 거울 앞에서 짓궂은 표정 놀이를 하면서 빵 터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거울을 통한 변화는 ‘나’를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기분에 어떤 표정을 잘 짓는지, 평소 습관적으로 하는 자세 등 외모적인 면부터 주로 어떤 생각을 하고, 뭘 힘들어하는지 등 나라는 사람의 특성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즉 거울은 ‘나다움’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다소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 매개체가 되어준다.
눈에 비친 모습 그대로 내 건강 상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간 스트레스를 핑계로 즐겼던 일탈 같은 야식과 디저트들은 어느새 내 몸의 발란스를 무너뜨렸다. 늘어난 체중과 그에 반해 떨어진 자신감 모두 이제 제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구부정한 고개와 수그린 어깨도 쫙 펴고 건강한 라이프스타일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간헐적 단식으로 규칙적인 식사 시간을 세팅하고, 건강 식자재들로 정성 들인 한 끼를 챙긴다. 매일매일 경보와 요가로 적정 활동량을 채우기 위한 노력도 빼먹지 않는다. 소소하게 지켜나가는 건강한 습관들로 더디지만 조금씩 몸도 가벼워지고, 생각도 여유라는 단추 하나를 풀어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마음은 문득문득 쫓기듯 긴장하는 나에게
잠시 느긋해져도 괜찮다고 말 한마디 건네고, 스스로 정성 들인 차 한 잔 정도 권해본다.
내가 원하는 회복의 모습을 견고한 성에 비유한다면,
이제 막 그 주춧돌이 될 작은 벽돌 하나 쌓은 느낌이다.
그렇게 거울이 ‘나’를 회복하는 첫 벽돌이 되었다.
*번외
거울은 심리학에서도 주로 나를 인지하는 것(자기의식)에 대한 도구로 이미 여러 실험에 활용되고 있었다.
거울 자아 효과 - 비맨이라는 미국 심리학자, 거울 뉴런 효과 - 리촐라티 이탈리아 신경심리학자 등.
무엇보다 자존감 향상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많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