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잔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번아웃된 워킹맘의 회복 일기

by 진심어린 로레인

전쟁 같은 사랑, 이 노랫말은 지난 1년간 내가 겪어낸 일상을 정확히 담아내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한 건 맞지만, 정리하고 돌아서면 두 아들에 의해 순식간에 다시 어지러워지는 집안은 전쟁터고, 촘촘히 짜인 스케줄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일주일은 숨이 막힐 만큼 긴박하고 치열했다.


불이 붙기 시작하는 온도인 발화점을 마인드 컨트롤이 어려워지는 한계점이라고 재정의해본다면, 그때의 나는 발화(Anger : 화)점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발화점에 다다른 사람의 특징은 ‘별 것’ 아닌 상황에도 예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깝고 편한 관계에서는 더더욱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분출해버리기 쉽다.


발화점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일 여유’가 없어서다. 인사이드 영화처럼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다양한 감정들의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고 잘 어르고 달래주었다면, 주변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는 활화산까진 되지 않았을 텐데…

나의 언어는 주로 감정이다. ‘그때 좋았어.’ ‘그때 약간 어색했잖아.’ 등등 쉼없이 스쳐가는 많은 순간들을 감정의 언어로 저장해왔다. 부정적이고 싫었던 감정은 좋았던 감정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짙게 기록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일들은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억울하게 실수를 떠안았어야 할 때는 불덩이 같은 화가 저장되었다.


문제는 그런 감정의 잔재들이 불청객처럼 지금의 내 마음과 생각을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그때 너무 힘들었어. 정말 억울하고 속상했어.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
아무래도 난 실패자인 것 같아. 다신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휘덮을 때면, 다시 무언갈 시작해볼 용기까지도 빼앗겨 버린다. 겉은 삼십 대 중반을 달리는 어른이지만, 속은 투정하는 어린아이처럼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본다.


다행히도 퇴사 후 나 자신에게 선물한 안식의 시간을 통해 그런 나를 어루만지고 다독이고 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오롯이 나를 위한 햇빛 산책이나 티타임을 갖는 리추얼들을 시작했고, 조금씩 조금씩 함몰된 감정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그때의 시간과 감정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잔재들이 보이지 않는 끈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떠나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이젠 떨쳐내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감정으로부터)


이미 몸은 떠나왔지만, 계속 묵혀내고 있는 감정의 잔재들을 벗어버리기 위해 나는 변화를 선언했다. 그렇게 내일의 나를 묶고 있는 과거 쓰디쓴 감정들에서 떠나는 용기를 낸 것이다. 그리고 감정을 부정하거나 때론 무력하게 항복하던 자세를 ‘감정을 인정하고 우위에서 조정하는 자세’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때의 너는 그게 최선이었어.
완벽하기는 힘들어! 완벽한 사람도 없고. 다음에 더 잘해보는 거지.


마인드를 바꿔 감정의 잔재들을 다독이듯 인정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감정의 형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깊이 파인 감정의 경우 여러 번 반복해줘야 점점 옅어진다는 사실.


오늘도 한잔의 차를 마시며 올라오는 감정들을 넉살스럽게 토닥여본다. 어쩌면 ‘나’의 여러 모습들을 인정하는 성숙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상상 속의 완벽한 초상화가 아니라 진짜 삶에서 마주하는 실제 내 모습(설령 맘에 안 드는 모습까지도) 말이다.


세바시에 출연한 우미영 어도비 대표님의 강의를 듣고 한 가지가 마음에 남았다.

나를 믿어주는 것이 곧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라고.


내일의 창을 열고, 아직은 소심하게 빼꼼히 고개만 내밀어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떼쓰듯 주저앉으려던 과거의 나를 벗어버리고, 내일의 나를 믿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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