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친 모습까지 공유하는 사이
번아웃된 워킹맘의 회복 일기
퇴사 이후 확연히 늘어난 시간은 나를 느슨하게 만들어준다. 부디 안식의 시간만은 수직적인 성장을 바라는 조급함을 버리고 순간을 깊이 음미하는데 힘쓰기로 다짐해본다. 마음의 여유가 곧 시간의 여유니까.
남편과 함께 부루마블이나 루미큐브 같은 보드게임을 밤늦게까지 즐기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의자와 돗자리를 챙겨 자연에 한가로이 머무는 일이 많아졌다. 성취를 독촉하는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회복에만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어난 변화다.
바닥을 친 지금, 나를 가장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다.
함께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어쩌면 관찰카메라처럼 그들의 시선을 통해 내 삶이 생중계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습관적으로 하는 부모의 말과 행동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그대로 모방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소름 돋을 때가 많다. 무의식 중에라도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건 불가능이다. 짐작컨대 가족들의 카메라에 담긴 24시간 내 모습은 부끄러움에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지도.
가정 울타리 안에서 나는 철없는 엄마다. 클로바가 틀어주는 음악에 텐션을 높여 막춤을 추기도 하고, 새로 산 옷을 입고 아이들 앞에서 패션쇼를 하거나, 내가 만든 요리에 내가 제일 심취해 흡입해버리는 먹방까지… 요즘 예능에서 다루는 모든 콘텐츠를 애들 앞에서 망가지듯 선보이면서도 그게 부끄럽지는 않다. 그런 엄마를 보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을 보는 게 소소한 행복이니까. 그러나 발화(Anger)점을 넘나들며 예민한 날이면 아이들이 장난치다 떨어뜨린 빨래를 주으며 헐크가 되기도 했고,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아 기운 없는 날엔 소파에 누워있는 좀비가 되기도 했다.
엄마가 된 지 6년 차임에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로 난감한 육아 상황에 맞닥뜨리면 여전히 신입처럼 버겁다.
이런 엄마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남편과 아이들. 여섯 살 첫째는 불쑥 "엄마 예쁘다! 엄마 사랑해!"라고 손하트를 날리며 설렘을 주고, 세 살 둘째는 함박웃음으로 달려와 품에 가득 안기며 따뜻한 생기를 전해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신랑과의 점심 데이트는 집콕하는 일상에 처지지 않도록 한껏 멋을 내보는 시간이 된다. 연애 시절로 돌아가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이 아이컨택을 하며 식사를 한다. 그럼에도 이제는 아이들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소개팅하던 그 시절이 엊그제인데, 침대를 차지하는 아들이 둘이나 있다니…" 다시금 부부 전우애를 다진다.
번아웃이란 이름의 일상의 무너짐을 막아주는 보호망.
이 시기를 보내면서 나는 가족을 다시 정의해본다. 몸도 마음도 훅 놓아버릴 위기의 순간에서 촘촘하게 짜인 가족의 연대감은 나를 계속 붙잡는 힘이 되어준다. 아이들의 미소가 비타민이 되고, 남편의 허그가 영양제가 되어 버텨내 본다.
내 상태가 좋든 안 좋든 모든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참 좋다. 우리가 함께 본 자연, 함께 나눠먹은 음식, 함께 웃는 웃음소리, 함께 잡은 손의 온기까지 고스란히 서로의 마음에 기록되어 한 번씩 꺼내 곱씹을 수 있으니까.
지난 월요일 산책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 해바라기씨를 봤다. 순간 ‘와 아름답다!’ 생각했지만, 사진으로 남기질 못했다. 마치 나에게 가족은 바람을 타고 새로운 생명력을 전해주는 그 씨앗이 아닐까?
고마워 여보, 애들아.
다행이다. 우리가 이 시기를 공유하고 있어서…
나도 그대들의 모든 순간을 기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