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태와 만남의 상관관계
번아웃된 워킹맘의 회복 일기
기억 속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일주일 빼곡히 잡힌 약속에 매일 외출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땐 혼자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내 존재감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애썼다. 점점 체력이 달리고 서운함이나 불만이 쌓이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일은 부질없다고 느꼈다. 만남은 서서히 줄어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다.
안식을 선언하며 이기적으로 나만 돌보는 데 집중해왔다. 2개월이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흐르고, 마치 연출된 것처럼 내 생일을 맞았다. 카톡 생일 알림 기능으로 생각지도 못한 지인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십수 년 전에 다양하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었다. 모처럼의 대화는 반가움 이상으로 내게 새로운 활기를 전해주었다. 이제 다시 만남을 시작해도 될까?
첫 번째 만남.
나의 예전 모습을 기억해주는 사람들
열일곱 살의 볼 통통 여고생을 기억하는 친구, 열혈 청춘의 대학생을 기억하는 동기들, 한창 날리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전 직장동료들, 창업으로 고군분투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디자이너 동생까지. 그 시절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추억이 소환되는 것은 물론, 나도 모르게 그때의 성격이나 말투를 드러낸다. 마치 가수들이 오래전 발매한 노래에도 몸의 기억에 의지해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추억 속의 나를 듣고 있자면, ‘같은 사람 맞나?’ 의문이 든다. 지금은 ‘에너자이저, 생기발랄한’ 나로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린 것만 같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그 시간들을 그들의 기억 주머니를 통해 새롭게 접할 때면, 나의 기억도 다시 새롭게 페인트칠이 된다. 만남이 무르익어갈 때면, 지금 나의 지쳐있는 시간은 인생의 노선 중에 종착이 아닌 스쳐가는 역일지도 모르겠다는 낙관적인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를 지켜봐 온, 그리고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얻는다.
두 번째 만남.
마음을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낯선 누군가와 언택트로 만나 깊이 있게 나눌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우연히 보게 된 나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치유 프로그램 모집글에 머뭇거림 없이 신청서를 써냈다. 스스로 다독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내 마음 상태를 인정하고 나니, 어쩌면 ‘나, 지금 이런 상태인데도 받아줄 수 있나요?’라는 의구심을 커뮤니티 안에서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임이 시작하기 전, 집으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힐링 테이블 키트가 도착했다. 매번 모임마다 마음을 가다듬고, 모임을 준비하는 의식으로 테이블을 세팅하고 줌에 접속한다. 모임의 구성은 간단하다. 현대인의 정서적인 피로, 상처를 보듬어주는 짧은 영상을 보고 난 뒤, 매주 정해진 ‘나’에 관한 질문을 그룹별로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제시된 질문을 통해 때론 덮어놓고 싶은 추억이나, 부끄러운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분명 연결고리 하나 없는 낯선 사람들인데,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공감한다는 게 신기했다.
일주일에 한 번, 5주 간 진행된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담백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회가 거듭할수록 혼란스러운 내면이 당연한 거라고 인정받으니, 움츠린 마음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겉은 평범해 보이지만, 마음엔 갖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고, 우리가 회복을 위해 서로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모임을 마치고 나니, 나도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여유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만남.
엄마로서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나누는 언택트 커뮤니티
임신과 출산을 겪은 엄마들에게는 군대 동기만큼이나 끈끈함이 있다. 교회 프로그램 중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지치기 쉬운 엄마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엄마로서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발견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다. 10주간 매주 줌으로 만나 목사님이 지도하시는 마더링 스킬과 말씀을 듣고, 이어서 조별로 나뉘어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같은 엄마라고 해도 시험관으로 어렵게 임신을 한 임산부도 있고, 아이 셋을 키우는 베테랑 엄마도 있고, 8년째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예비 엄마도 있고, 아이의 알 수 없는 피부질환에 마음이 아픈 엄마도 있다. 서로가 처한 육아의 상황은 다르지만 나는 그분들과 나눔을 통해 나의 힘듦을 위로받을 뿐 아니라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되었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비슷하게 혹은 더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내가 당연시하던 걸 간절하게 소망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위로 받음에서 위로를 건네는 입장이 되고, 불평하던 입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오게 된다.
집 정리해주는 ‘신박한 정리’ 프로그램처럼 나는 지금 ‘마음 정리’ 편을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부서지고 지친 마음을 그 색깔과 모양에 따라 필요한 만남으로 처방하고 있는 것 같다. 회복을 위한 여러 모양의 만남을 통해 다시 조금씩 나다움의 기지개를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