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끝에 숨겨진 번아웃을 극복할 힌트

번아웃된 워킹맘의 회복 일기

by 진심어린 로레인

나는 금손과 망손 그 사이 어딘가에 손재주를 갖고 있다. 한 번은 누군가 나에게 잘하는 게 뭐냐고 물었는데 너무나 평범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쩔 땐 금손이 마냥 부럽기도 했고, 어쩔 땐 망손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기며 그럭저럭 살아왔다.


안식의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 번아웃을 회복할 열쇠가 손끝에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삶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손끝으로 무언갈 창조’ 해보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처럼 만족감과 동시에 소소한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내 손으로 요리하고(cook), 만들고(make), 그리던(draw) 일명 ‘made by Me’들은 소소한 즐거움과 동시에, 생산적인 삶에 대한 나의 잠들었던 열정들을 깨워주었다. 어떤 이유에서, 무엇을 만들었고,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나의 핸드메이드 여정을 기록해본다.


음식

그동안 놓치고 있던 집안을 돌보기로 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기에 여유가 넘치다 보니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요리를 할 땐, 몸을 생각하는 건강한 재료 뿐 아니라,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민한다. 매일 아침 운동삼아 1시간을 걸어서 출근하는 남편이 빈속으로 출근하지 않도록, 빠르고 간편한 건강 메뉴 ‘검은콩 두유’를 직접 만들었다. 콩을 불리고 푹 삶아, 땅콩과 꿀, 물을 넣고 갈면 되는 간단한 요리지만 내가 먹어도 고소해서 한 컵 순삭 할 메뉴라 뿌듯했다. 은근 입맛이 까다로운 신랑도 만족하는 메뉴다.

남편의 위 건강을 위한 오징어 양배추 스테이크, 변비에 좋은 시금치 사과주스, 단이가 좋아하는 고소한 그릭 요구르트, 건이가 좋아하는 달콤한 곶감 스무디, 뿔소라 콩나물무침, 오징어 떡볶이, 한우 샤부샤부, 된장국수, 우리 집 어묵 마니아 남자들을 위한 어묵 라자냐 등등 시간과 정성만 조금 더 들인 것뿐인데, 나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다채로워지니 뿌듯함과 함께 건강하게 살이 오르는 아이들을 볼 수 있어 참 감사하다.


가방

내 인생 가장 편하게 사용했던 가방은 얼룩말의 얼룩무늬 패턴이 그려진 에코백이다. 스무 살에 샀던 가방으로 대학생활, 결혼 후 신혼까지 장장 10년을 데일리로 메고 다녔다. 수납도 넉넉해서 좋았지만 빳빳한 광목천이 아닌 자연스럽게 흐물거리는 촉감에 정말 편하게 멜 수 있었던 에코백이었다. 몇 년 전 닳아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정리했었는데, 지금도 그 에코백이 그립다. 그 뒤 책과 아이패드를 넣고 다닐만한 에코백을 아무리 찾아봐도 비슷한 걸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봄옷으로 옷장을 정리하던 차에 안 입을 것 같은 마시모듀티 블라우스를 발견했다. 옷을 집는 순간, 내가 원하던 에코백의 촉감이 느껴졌다. ‘오,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에 리폼을 도전해보기로 했다. 어떤 모양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심하다가 블라우스의 진주 단추들을 포인트로 살려 디자인 작업을 해보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옷을 잘라내고 시침질해보니, 정말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에코백이 만들어졌다. 시어머님께 미싱 도움을 받기 위해 주말에 시댁으로 달려가 기초부터 배워가며 온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다. 직접 어깨에 메어 보면서 끈의 길이, 가방의 크기와 깊이, 주머니의 위치까지 세세하게 조정하다 보니, 완성품은 나만을 위해 맞춰진 에코백 그 자체였다. 벌써 가방을 만든 지 세 달, 가볍고 어깨에 착 감겨서 정말 손이 자주 가는 에코백이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정말 정말 만족스러운 아이템이다.


그리고 그림

신랑이 6주년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준 아이패드 에어 4와 애플 펜슬. 선물해준 사람의 정성도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다짐했다. 우선 애플 펜슬을 활용해 스토리 있는 일러스트를 그려보기로 했다. 1일 1 드로잉을 시작해보려고 했지만 목에 무리되지 않도록 그림을 그리며, 꾸준히 새로운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하고 있다.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드로잉 툴... 앞으로 익숙해지면 그림도 점점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하루는 아이들이 하원길에서 본 강아지가 정말 귀엽다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실은 엄마는 강아지를 무서워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만 삼키고 강아지 그림으로나마 아이들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해보고 싶었다. 드로잉 키트를 사서 오랜만에 붓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열심히 가이드대로 색칠해보니 멋진 작품이 완성되었다. 봄 느낌 물씬 느껴지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꽃과 함께 배치했다. 그림을 본 아이는 ‘초롱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주면서 우리 집에 정말 강아지가 생겼다며 기뻐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머릿속이 복잡할 땐 단순노동이 최고야!’라고 농으로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직접 손으로 열심히 만들다 보니, 완성작을 맛보고 즐기는 기쁨은 배가 된다. 답답했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차원이 다른 활력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도 열 손가락 끝에 숨겨진 보물들을 더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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