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번아웃된 워킹맘의 회복 일기

by 진심어린 로레인

일을 시작한 지 10년. 그동안 주기별로, 때론 뜬금없이 수많은 슬럼프들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의미와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일은 뭘까 고민하며, 일에 대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번아웃은 기존의 처방이 통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니던 회사는 퇴사를 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차마 멈출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런 일은 내가 소모된다기보다 오히려 충전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배워서_남주는_순간


어려서부터 듣던 ‘배워서 남 주자’는 내 좌우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왕 사는 거 내가 가진 것(경험이나 노하우)을 나누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 졌다. 감사하게도 5~6년 전부터 주로 대학생들을 만나며 멘토링을 할 기회들이 주어졌다. 커리어나 직무에 대한 고민은 업무 경험을 디테일하게 나누고, 여자로서 느끼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고민은 내 경험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나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많고,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인생 첫 회사를 선택해야 하는 친구들은 보통 자신의 커리어가 잘못 그려질까 봐 두렵기도 하고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그럴 때면 ‘잘못된 선택은 없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미 자기 스스로 답을 갖고 있기에 조언보다는 용기와 격려를 전한다.


멘토링은 한두 시간 정도 진행되어도 주제에 따라 준비까지 하면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멘토링 이후 멘티들의 고맙다는 진심이 담긴 문자 하나는 그런 수고로움을 잊게 해 준다. 심지어 내가 제법 쓸모 있게 느껴진다.

멘토님!
오늘 주말인데도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 듣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꿈꿔볼 용기가 생겼어요~!!
단기적인 목표들로 성공 경험도 늘리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갈 자극도 받았습니다!!
덕분에 알찬 방학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멘토님~

나도 내 앞날을 그려가기 위해 다양한 레퍼런스가 필요하듯,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후배들에게 역시 하나의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


#아이를_기쁘게_하는_순간


엄마의 역할을 통해서 맛보는 뿌듯함은 또 다른 차원이다. 아이는 종종 ‘엄마 이거 해보고 싶다’, ‘이거 재미있을 것 같아’ 등등 자잘한 희망 사항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것들을 당장 해줄 순 없어도 마음에 새겨놓고 기회가 될 때 하나씩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그중 하나가 이층 버스 타기였다. 이층 버스는 주로 경기도행이라 제대로 하루 날을 잡아야만 했다. 아이와 데이트할 생각에 설레면서도, 비밀 작전을 개시하듯 틈틈이 이층 버스와 코스 검색했다. 드디어 버스를 타기로 한 날, 이른 하원에 신난 아이와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앞에 계신 분께 이층 버스가 오는 곳이 맞는지 여쭤봤다. “낮에는 이층 버스가 잘 안 와요…”돌아온 답변에 당황함도 잠시. 때마침 눈앞에 지나가는 다른 이층 버스. 아이의 손을 잡고 옆 정류장으로 뛰어가 겨우 탑승했다. ‘그런데 우리가 몇 번 탄 거지?’ 버스 번호를 찾느라 허둥거리는 엄마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2층의 높은 뷰를 마냥 신기해했다. “엄마 저기 자동차가 엄청 쪼그매~” 신기한 탄성을 연달아 날리며 수다쟁이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산행 5300번을 타고 떠났다. 양재 시민의 숲에서 마지막 내릴 기회가 있었지만, 더 오래 타고 싶다는 아이 말에… 고속도로를 타고 오산으로 달렸다.


낯선 동네에 내려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으며 다시 서울을 갈 방법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엔 멀미로 지하철을 타고 싶었으나, 또 타고 싶다는 아이의 부탁에 다시 반대편 버스정류장에서 서울행 5300번을 타기로 했다. 버스 배차 간격으로 시간이 남아 오산시청 앞 공원 놀이터에 잠시 들렀다. 세상 행복하게 노는 아이를 보는데 갑자기 눈이 뿌애졌다. 쓱쓱 고인 눈물을 닦아 내고 아이에게 환하게 웃어줬다. 고작 소원 하나 들어줬을 뿐인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를 보니 나에게도 행복이 전해졌다.


나는 나의 진심이 상대에게 통할 때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가?

고마움과 행복을 느끼는 상대로부터 나 역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짙어지는 듯하다. 이렇게 자신감 게이지가 계속 차오르면, 나도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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