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후무할 인생의 최고 바닥점을 찍은 지난 1월, 만신창이처럼 망가진 몸 상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증이 나를 덮쳤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안하면서도, 깊은 바다 한가운데서 발버둥 칠 힘도 없이 가라앉는 나를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10년 간 일하면서 종종 슬럼프에 빠진 것 같다고, 아무래도 번아웃된 것 같다고 스스로 진단했었는데, 진짜 번아웃이 오니 그 차이를 알겠다. 슬럼프는 탄력은 쌩쌩한데 어디로 튀어야 할지 모르는 ‘방향 상실’의 상태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직장 상사, 학교 선배, 멘토 등 인생 선배들을 만나 다시 나침반이 가리킬 방향을 점검해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번아웃은 늘어날 대로 늘어나 탄력이 전혀 없는 너덜너덜해진 ‘회생 불가’ 상태다. 다 쓴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듯, 아픈 몸과 지친 마음이 재생할 힘이 생길 때까지 충분한 시간에 내버려 둬야 한다.
나는 그렇게 안식을 선언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을 꾸준히 기록하면서 조금씩 회복선을 타고 있다고 느껴졌고, 4개월이 지나서야 일상으로 복귀했다. 번아웃이 스쳐간 지금, 가끔씩 나에게 묻는다.
나는 그동안 더 단단해졌을까? 어쩌면, 아직도 불쑥불쑥 번아웃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안식하는 기간 동안, 그저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루하루 보냈다. 억지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몇 가지 일들만 해왔다.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몸과 마음이 스스로 필요를 외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만큼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만의 리추얼이 만들어졌다.
마치 번아웃이 준 선물처럼.
1. 나 홀로 여행하기
주기적으로 한 번씩 환경을 바꿔 피톤치드 가득한 산림욕이나 시야가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오는 것이다. 여행만으로 기분 전환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가는 것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기에, 꼭 안전하게 나 홀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 안식의 시작과 함께 송도 근처의 에어비앤비에서 3일 정도 머물렀다. 떠나기 전까진 아이들과 신랑이 걱정되었지만, 도착하니 정말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건 뻘쭘하고 어색했지만,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관계망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2. 수시로 거울 보기
번아웃이 오는 신호는 어쩌면 거울을 보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 아닐까? 아침에 세수, 양치할 때 빼곤 거울을 볼 여력이 없이 바삐 살았다. 오랜만에 거울을 제대로 보니, 그동안 체중이 평소보다 3-4킬로가 불었다는 것도, 구부정한 자세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울 속 나 자신이, ‘정말 고생했구나!’ 느껴져 눈물이 터졌다. 어색했지만, 거울 속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너, 고생 많았다. 참 오랜만이다.’ 메타인지적 시선으로 나를 토닥여줬다. 그 뒤 집안 곳곳 가능한 많은 거울을 걸어놓고, 수시로 거울을 보며 시간이 나를 어떻게 스쳐가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나를 제대로 마주하는 시간이 참 소중하다.
3.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
잘 쓰는 것에 부담을 내려놓고, 기록에 가까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늘의 내 감정, 과거의 힘들었던 사건, 내게 상처 준 사람까지. 하얀 워드 문서가 내 감정의 쓰레받기, 내 대나무 숲이 된 것 마냥 생각나는 대로 적기 시작했다. 지금 내 몸에서 아픈 곳은 어딘지, 자꾸만 버겁게 느껴지는 감정들은 뭔지,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은 누군지 등등 세세하게 적으면서,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분노, 화, 속상함, 억울함)을 쏟아냈다. 보여주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글은 객관적으로 나를 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래, 힘들만했어!’ 글을 쓰고 나를 위로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감정의 후련함을 경험했다. 그렇게 글 속에서 회복되어간다.
4. 자연식 먹기
스트레스가 과한 날은 어김없이 폭식을 했다.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이나 달달한 빵에 자꾸만 손이 갔다. 점점 살이 찌면서 못 입는 옷이 많아졌는데도,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매장에 가면, 한치수가 큰데도 딱 맞다고 좋아했던 나였으니까. 먹는 걸로 스트레스받기 싫어서 처음부터 식단을 바꾸진 않았다. 그러나 마음이 편해지면서 먹는 것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을 생각한 자연 재료로 맛있게 먹을 방법을 고민하며,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양배추 버터 스테이크, 오징어 버터구이, 콩나물 파스타, 야채비빔밥, 검은 콩국수, 그릭 요구르트 등등 미리 채소를 손질해두고 즉석요리처럼 휘리릭 조리만 해 먹었다. 자연스레 내 입맛도 순수하게 리셋되었다. 언젠가 편의점을 지나는 데 라면 냄새가 나서 쳐다봤더니, 순간 거북함이 느껴졌다. 자연의 재료로 맛있게 건강을 챙긴다. (TMI지만, 나는 4킬로 체중 감량을 성공했고, 현재 잘 유지 중이다.)
5. 햇빛 산책하기
안식의 기간 동안 매일 공원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니 숨이 찼다. 삼십 대 초반에 저질체력이라니 서글퍼졌다. 그러나 잠깐의 자연 속 산책에 몸이 반응했다. 생기가 없어진 나의 몸이 생기를 원하고 있었다. 생각처럼 무기력증을 쉽게 넘기 힘들었지만, 겨우 몸을 일으켜 공원을 돌고 오면 전신의 세포들이 생기를 수집한 것처럼 신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해를 보는 것은 충전기에 꽂힌 방전된 핸드폰처럼 전신이 찌릿해지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자연의 생기를 수집하여 내 안의 텅 빈 생기함에 차곡차곡 쌓아본다. 가끔씩은 미세먼지를 핑계로, 비 오는 날씨를 핑계로 산책을 소홀히 하지만, 광합성을 하듯 햇살에 충분히 나를 맡기며 자연의 생기를 끌어모으는 중이다.
다시 건강하게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가정을 가꾸는 일이 행복하고, 그간 미뤄뒀던 독서가 즐겁다. 새로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일 등 내면의 욕구들이 자연스럽게 샘솟는 중이다. 그러나 번아웃 이전의 삶과는 다르다.
번아웃 이후, 나는 다시는 번아웃을 겪고 싶지 않은, ‘번아웃 조심증’이 생겼다. ‘이 일이 나에게 무리가 되진 않을까’ 물으며, ‘나’ 중심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눈치를 보며, ‘이 정도는 해줘야, 상대가 만족하겠지…’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그러나 과감히, ‘오늘은 여기까지!’를 선언할 줄 알게 되었으며, 최선을 다하되 무리한 기준까지 맞추느라 버닝 하는 열정을 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 번 달려보자!’, ‘에너지 넘친다’는 표현이 무섭다. 평상시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할 에너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미리 끌어다 쓰는 것은 또다시 바닥을 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번아웃이 내게 준 선물들은 나를 아끼는 리추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나의 내면은 더 단단해져 간다. “내가 젤 소중해!”를 기억하며, 딱 오늘의 에너지만 지혜롭게 사용한다. 나는 ‘나’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아내’이기도 하기에. 지금 내 역할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꾀이자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