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퇴사 후,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 속에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내 삶은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오랜만에 내 상황을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번아웃을 회복하도록 도와준 그 많은 리추얼 중에 지금까지 잘 유지하는 것들이 있다. 시간과 에너지 차원에서 부담이 적으나 상대적으로 만족감이 크게 느껴지는 한마디로 ‘가성비’ 좋은 리추얼들이다.
1. 나를 마주하며 나를 인지하게 하는 거울 보기
: 부끄럽지만, 내가 나를 본다는 것은 나를 세상의 중심에 두고,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를 아끼는 습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로션을 바르면서, 귀걸이를 하면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세수를 하면서 '일상적으로 보는 거울'에서 조금 더 짬을 내어 지친 내 어깨를 다독이고, 기분 좋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새로운 걸음을 앞둔 설렌 내 마음을 격려하는 과정으로 거울 속 나를 마주한다.
2. 마음을 다독이고 지금을 기억하게 하는 글쓰기
: 육아 일상 주제로 에세이를 쓰면서 작년 여름 브런치 활동을 시작했다. 나만 아는 에피소드가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꽤 많은 사람들에게 닿는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다. 지금껏 누적 37만 뷰라는 숫자는 글쓰기에 조금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나는 공개할 글과 비공개할 글을 병행하며 글쓰기 효과를 배로 누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 흐트러진 내 마음과 우선순위를 글을 통해 다독이고 정리해 나간다. 불명확한 불안을 꽤 구체적인 감정으로 표현해내고 몇 가지 실행 포인트로 해결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3. 몸의 생기를 더하는 햇빛 산책
: 예전부터 봄볕은 겨우내 얼어붙은 땅과 물을 녹이기 위해 유독 따갑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봄 햇살은 따듯한 기지개 같다. 삭막하게 메말랐던 공원이 어느새 초록 초록으로 뒤덮인 걸 보면, 자연은 참 경이롭다. 온기를 품은 생기를 수집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곳곳을 누빈다. 코로나의 심각한 상황에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이 아쉽지만, 찬기운이 섞인 봄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기분, 봄볕을 반사하며 너울대는 한강 윤슬을 감상하는 것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만큼 행복하다.
4. 내 몸에 가장 좋은 음식으로 구성된 식단
: 작년 말, 지인의 추천으로 8 체질 진단을 받았다. 그는 운동이나 규칙적인 습관으로도 개선되지 않은 컨디션을 해결할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이왕 삶을 리셋하는 과정에서 식습관도 개선해 보면 좋겠다고 기대하며 한의원을 찾았다. 몇 번의 진맥을 통해 나는 금양 체질 진단을 받았다. 평소 고기와 밀가루를 좋아하던 나에겐 천청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처방해 준 식단 리스트를 받아왔다. 해산물과 줄기채소 등 특별히 나에게 맞는 재료들을 체크하며 레시피를 연구하고 장을 보는 과정은 꽤나 번거롭지만 한 달 동안 유지하니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힘들었던 변비, 숙면 같은 문제들, 영양제를 의지해야만 했던 저질 컨디션이 많이 개선되었다. 정말 하루하루가 미라클이다.
지금 나는 프리 워커의 삶을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조금씩 일의 기회들이 연결되어 2개 브랜드 프로젝트에 팀으로 참여하고, 직무 강의와 멘토링을 겸하며, 소소한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워킹맘으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병행해야 하지만, 예전처럼 양분할 수 없다면 이제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블렌딩 되도록 플렉시블 한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나의 마인드가 변했다고 해도 일의 규모나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히 나를 긴장하게 한다. 일이 몰아닥칠 때면 “이렇게 무리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번아웃 경고음이 울리는 것 같고, “갑자기 어린이집이 폐쇄되면 나는 일을 어떡하지?” 늘 속으로 예상 시나리오를 돌리면서 고민을 한다. 일을 끝내고 여유로울 때조차도 “이렇게 퍼져도 괜찮은 걸까?”하며 온전히 그 순간을 누리기 어렵기도 하다. 나의 ‘삶’과 나라는 ‘사람’을 잘 사용하는 설명서가 완성되지 않은 채, 나는 여전히 매 순간 새로운 나를 마주하고, 가끔은 버벅대는 내 모습이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정리되지 않은 시간조차 여유롭게 흐르도록 관조하려고 한다. 지금 정해진 스케줄로 매일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상반기가 훌쩍 지나있겠지만, 이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잘 지켜 나갈 것이다.
나에게 많은 레슨을 준 번아웃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 속에서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그 속에서 더 의연하게 헤쳐나가도록 가이드가 되었다. 일에 있어서 무시로 나를 흔드는 방황조차 다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번아웃이란 인생의 쉼표에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어딘지 모를 종착역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