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엄마보다 한 아이의 엄마로
똑똑똑, 초보엄마 입니다.
엄마의 입장에선 아이가 둘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엄마와의 관계는 언제나 일대일이다. 각자의 입장대로 엄마가 채워주길 바랄 뿐, 내가 가진 한 덩어리를 둘이 나눠 가질 생각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맞지만, 매번 그런 상황에서 나의 한계를 마주할 때면 부모가 되는 것은 쉽지 않구나 느낀다.
한 뱃속에서 나와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외모와 달란트, 취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서로의 선호가 명확히 구분된 아이들을 볼 때면 정말 생명의 신비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과일을 먹어도 큰 아이는 딸기처럼 말랑하고 부드러운 과일을, 작은 아이는 사과처럼 아삭아삭한 식감의 과일을 선호한다. 어쩌다 같은 과일을 먹을 때면 그저 감사하지만, 서로 원하는 과일을 꼭 사달라고 엄마한테 신신당부를 하곤 한다.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는 각자 마음을 채워주는 것을 놓치지 쉽다. 하루는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아이 낮잠 시간에 연락이 왔다. 보통 알림장으로 남겨줄 법도 한데, 선생님의 전화에 순간 큰일이 난 줄 알고 긴장했다.
“어머님,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1초도 너무 길게 느껴질 만큼 선생님의 용건이 뭔지 궁금했다. 심호흡을 하며 선생님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름이 아니고, 오늘 우리 OO가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네? 아니요… 별일 없는데요?”
“오늘따라 뭐가 맘에 드는 게 없는지 계속 기분이 안 좋아서요. 평소에 잘 노는데 오늘은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싫다고 거부하더라고요.. 들어올 때부터 속상한지 표정도 좋지 않아서요..”
순간, 머리가 쿵하고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시간을 돌려 아침 아이의 등원 길에 있었던 일이다. 집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차에 올라타는 것 까진 아주 아주 좋았는데, 어린이집에 도착하고 작은 일이 터졌다. 평소 같으면 둘째 아이 등원 길에 가족 모두 배웅을 해주곤 했는데, 오늘따라 큰 아이가 차에 남아있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차에 남기로 했다. 작은 아이만 아빠와 등원을 한 것에 아이의 기분이 다운된 것이다. 엄마도 같이 가면 좋겠다고 조용히 읊조리던 둘째 아이의 본심을 외면하고 차에 앉아있었는데… 아이는 그것이 무척 서운했던 것이다.
“실은, 아침에 엄마랑 등원을 못한 게 서운했던 거 같아요. 차에 형아가 남아있어서 같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저는 안 내렸거든요. 그게 기분을 안 좋게 한 것 같네요.”
차창문 너머로 아이의 축 처진 어깨를 보고서도… 달려가 꼭 안아주지 않다니. 내가 참 무심한 엄마구나 싶어서, 우리 둘째가 참 속상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쓰렸다.
아이들에게는 각자의 엄마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강하게 새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