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어린 로레인 Dec 04. 2021

클로바, 오늘 눈 와?

똑똑똑, 초보엄마입니다



매일 아침, 등원 준비에 정신없지만 첫째 아이는 어김없이 네이버 클로바(ai) 앞에 선다.


"클로바, 오늘 눈 와?"


아이는 1년째 눈을 기다리고 있다. 오매불망 눈이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1년 전 우리의 겨울이 떠올랐다. 소복소복 쌓인 눈에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 그리고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정성껏 눈사람을 만들던 아이. 아이는 제대로 눈을 즐겼다.


눈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공원으로 나가 놀았고,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에게 눈사람을 만들었다며 자랑하기 바빴다. 겨울을 진하게 만끽하다보니,  어느새 날이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눈이 오지 않을 것을 직감한 나는 아이와 마지막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 근처 근린공원으로 나갔다. 대부분 녹아버린, 아주 조금 남아 있는 눈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눈이 많지 않아 아주 조그만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엄마의 주먹만 한 눈두덩이를 두 개 쌓아 그럴싸한 눈사람 모양이 완성되었다. 크기는 아담했지만, 우리에겐 의미 있는 눈사람이었다. 아이는 낙엽과 가지를 주어와 눈과 코, 손을 만들어주었다. 제대로 사람과 닮았다.


아이와 만든 눈사람을 보면서 왠지 모를 애틋함이 밀려왔다. 혹시나 사람들에 밟히지 않도록 우리는 조심조심 안전한 곳으로 눈사람을 옮겼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한 번씩 올겨울 마지막 눈사람에게 인사할 수 있도록 담장 높은 곳으로. 아이는 눈사람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어렵게 뗐다.


"내일 또 올게!"


아이의 인사에 나는 부디 내일 녹지 말고 버텨주길 속으로 기도했다. 다음 날 눈이 뜨자마자 아이와 나는 눈사람으로 향했다. 어린이집 가는 길에 들려보니, 다행히 눈사람은 밤새 잘 버텨냈다. 조금은 더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아이는 웃으며 눈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 어린이집 다녀올게! 잘 놀고 있어!"


아이 어린이집을 보내 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독 햇살이 눈이 부시게 느껴졌다. 설마 눈사람이 녹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오후 늦게 아이를 하원 시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눈사람을 보러 들렸다.


"앗! 엄마, 눈사람이 없어졌어!"


눈사람이 있던 자리에는 흥건히 고인 물과 낙엽과 나뭇가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우리의 눈사람은 그날 그렇게 떠나버렸다. 아이가 느꼈을 상실감보다 더 큰 상실감을 맛본 나는... 혹시나 아이가 울지 않을까 걱정되어 살폈다. 아이는 약간의 눈물만 고였을 뿐, 담담하려 노력했다. 나는 아이에게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넸다.


"걱정 마! 내년 겨울에 분명히 다시 올 거야, 그때 더 예쁜 눈사람을 만들어주자!"


아이를 향한 말처럼 보이지만, 이건 내게 건넨 말이었다. 아쉬움과 속상함을 털어내며 우리는 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내년에 우리 꼭 만날 수 있겠지? 내년에 눈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는 오늘도 클로버에게 눈 소식을 묻지만, 클로바는 아쉽게도 이렇게 답한다.


"오늘 OO동에 눈 소식은 없습니다"


다른 지역엔 벌써 첫눈도 왔다던데, 우리는 언제 눈을 볼 수 있으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엄마의 진짜 이름을 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