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다시 첫 직장으로 출근하고 깨달은 것!
똑똑똑, 초보엄마입니다.
나의 첫 회사는 이름 없는 작은 에이전시 었다. 당시에는 그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굉장히 즐겁게 일하는 모습에 끌려, 무슨 일을 하고 내가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현실적인 검토는 전혀 하지 않고 무작정 출근을 했더랬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은 나를 엄청 답답해하셨고, 반 강제로 나는 경제적인 독립의 길로 들어섰다.
감사하게도 회사는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내며 급격하게 성장했고 조직에 속했던 7년 여의 시간 동안 이 분야라면 이 회사와 이 회사가 만든 것들을 모를 수가 없는 독보적인 회사로 탈바꿈했다. 나 역시 회사 안에서 일의 의미를 찾으며 끊임없이 도전했고, 다양한 업무를 배우고 소화하느라 고군분투했다. 그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후회 없이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만삭의 배를 한 채로 육아휴직의 길로 들어섰다.
첫 회사를 다닐 때, 나는 막연한 유리천장에 커리어가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리더십은 대부분 남자요, 이 일이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꽤 버거운 터라 이곳에서 내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퇴사를 결정했고, 엄마 타이틀을 유지한 채 광야 속 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하게 창업을 하기도 하고 계속 나만의 커리어를 쌓아왔다. 어느덧 첫 회사에서 일한 만큼, 회사 밖 커리어 역시 균형 잡힌 반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조만간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혹시 프리랜서 의사가 있을까요? 육아 상황이 있으니, 근무 형태는 필요하다면 조정 가능해요.”
개인적으로 최근 시작한 프로젝트도 있고, 기본적인 내가 유지하는 일들을 잘 병행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이 들기도 했지만, 흥미로운 프로젝트와 이미 잘 아는 팀과 협업은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케어하는 이슈도 크기에 신랑과 협의할 시간을 갖고 다시 회신하기로 했다.
신랑은 나에게 좋은 기회라면 아이들 등원을 분담할 것이며, 가사도 더 신경 써보겠다고 적극 지지했고, 나는 여러모로 내 일상을 최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일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드디어 아주 오랜만에 첫 직장으로 출근날, 두근거리면서 상기된 나는 조심스레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해 함께 할 팀과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세팅하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추억여행을 떠난 느낌이 들었다.
오며 가며 인사하는 예전의 동료들, 회사 근속연수가 높은 터라 그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아는 얼굴이 많아 반가움이 컸다. 나를 인턴 시절부터 봐왔던 과장님은 본부장이 되어 계셨고, 대리님은 부장이, 심지어 나의 부사수였던 신입은 조그만 팀의 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 사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로 서로의 근황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같은 목표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팀이 된다는 것은 다시 진지한 관계로 접어든 것 같아 신기했다.
무슨 감정인지 정의하는 것이 어렵지만...
스물네 살, 혈기 넘치던, 말이 좋다면 통통 튀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사람들, 프로젝트와 클라이언트 이슈로 눈물 짜며 서럽게 성장통을 겪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때론 부족한 성품에 부딪치기도 했던 관계들까지도 애증의 추억이 되어 더 애틋하게만 느껴졌다.
엄마이기 전에 다니던 회사를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 다시 다닌다. 우리 아이들은 모르던 나의 지난 시간들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나는 이 시간들을 통해 그 사이 내가 얼마나 성장했고 성숙했는지 점검해보고 싶어졌다. 그때의 철없고 미숙했던 모습들(가끔씩 이불 킥을 부르는)을 벗어나 이제는 좀 달라졌을까?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