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초보엄마입니다.
얼마전 6주간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끝났다. 다음 프로젝트까지 2-3주 텀이 있어서 뭔가 휴가가 주어진 느낌이다. 그런데 긴장의 연속에서 갑자기 생긴 자유 때문일까? 컨디션이 급 저하된 나는 온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시 엄마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 7년이 되었어도 여전히 나는 지친 순간이면 가장 먼저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 여린 딸이다.
몇 달 만에 친정집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아이들과 만반의 준비를 했다. 미리 올라오는 스케줄에 맞춰 기차를 예약하고, 내려갈 땐 차 안에서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필요한 간식과 장난감을 챙겼다. 드디어 내려가는 날, 새벽부터 부지런히 짐을 챙겨 출발. 차 사이드미러에 비친 뜨는 해를 보며, 쉼으로 채워질 이번 여행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4박 5일 일정으로 친정집에 머물며 나는 아이들과 온전히 오프 된 시간을 보냈다. 일에서 손을 떼는 것뿐 아니라, 강박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조차 마음 편하게 외면하며 오롯이 주어진 여유를 만끽하려고 노력했다. 삼시세끼 알찬 식탁을 차려주는 엄마의 정성에 감사히 밑반찬 하나하나까지 음미하려고 했다. 회, 병어구이, 삼겹살, 추어탕, 갈비탕, 짜장면, 순대, 떡볶이, 장어탕, 김치찌개, 갖은 종류의 나물들. 엄마 곁에서 살찌는 고민도 내려놓고 원 없이 먹고 쉬었다.
나도 엄마가 되어 살림을 꾸려보니, 며칠 머무는 동안 엄마의 살림 방식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도 워킹맘인데, 어쩜 이렇게 살림이 깔끔하지? 나와는 다른 엄마만이 고수하는 몇 가지 규칙을 보면, 놀라울 뿐이다.
1. 매 끼니 새로운 밥을 안친다
엄마는 매 끼니 새로운 밥을 지었다. 아침부터 밥솥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흰쌀 두 컵에 현미 잡곡 약간, 콩 한 줌. 그리고 더 부지런히 준비할 수 있다면 30분을 불려 더 맛있는 밥을 지으려고 한다. 나는 한 번에 많은 양의 밥을 짓고 바로 반찬통에 소분해서 급랭 시켜둔다. 그리고 매 끼니 해동 밥으로 식사를 차린다. 쌀을 씻고 밥솥에 앉히는 30-40분의 시간을 아끼기 위한 꼼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뜨뜻한 밥 한 그릇이 몸과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니 그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매 끼니 밥을 지어야 할 거 같다.
2. 설거지통에 쌓아놓지 않고 바로 설거지한다.
엄마의 설거지통은 왜 항상 깨끗할까? 바쁘다는 정당한 이유로 매번 설거지통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몰아서 설거지를 하는 탓에, 더욱 설거지가 골칫거리, 기피대상이 되었다. 이사 가면 1순위로 식세기를 장만할 예정이다. 그러나 엄마는 식세기가 없이 매번 설거지를 휘리릭 끝마친다. 요리 중간에도 설거지를 겸하며 식사 준비를 하기 때문에 식사가 진행되기 전부터 설거지통은 깨끗하다.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통에 채워지는 즉시 물을 틀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급한 성격, 빠른 손놀림, 쌓아두면 금방 냄새나고 벌레가 생긴다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엄마의 근면 성실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같은 엄만데, 엄마는 참 위대하다.
3. 반찬을 꼭 소분해서 먹는다.
엄마는 항상 반찬을 소분해서 먹는다. 반찬통을 통으로 꺼내 먹는 간편함을 두고, 여러 가지 반찬을 한 접시에 골고루 소분하거나, 각 반찬 그릇을 하나하나 소분해 밥을 차리기도 한다. 그런 엄마가 차린 식탁은 항상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 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인가? 맛있게 양념된 나물도 예쁘게 덜어진 모습을 보면 더 군침이 돌고 밥을 더 먹고 싶어 진다. 설거지 양이 많아지는 함정이 있지만, 엄마는 항상 반찬을 덜라고 한다.
4. 국을 꼭 끓여서 밥국 세트를 차린다.
아빠가 꼭 국을 같이 먹어야 하는 식습관을 갖고 계셔서 엄마는 결혼생활 37년이 넘게 매 끼니 국을 끓였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뭇국, 미역국, 장어탕, 김국 등 다양한 종류가 국그릇에 담길 때면, 그냥 편하게 먹으면 좋을 텐데 엄마가 고생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엄마는 항상 아침은 가볍게 빵으로 먹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드시지 않는 국을 가족들을 위해 차리는 엄마. 잠이 덜 깬 채로 차려진 식탁에 앉아 따뜻한 국물 한 숟갈을 뜨면, 목을 타고 몸에 흘러가면서 아침을 깨운다.
5. 과일을 포크와 함께 내놓는다.
이제 참외가 맛있는 계절이 돌아왔다. 나의 최애 과일 중 하나인 참외. 간식으로 참외 하나 깎아 통으로 들고 베어 먹는 게 습관이 되어있는 나는, 엄마가 정성스럽게 깎아 한입 크기로 잘라놓은 참외를 보고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갈하게 놓인 포크까지. 엄마는 항상 과일을 포크와 내놓는다. 간편, 신속이라는 단어가 내 주방 라이프를 지배한 터라 참 소소한 것들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참외도 길게 하나씩 들고 먹으라고 아이들한테 주곤 했는데.
엄마 집에서 보낸 4박 5일, 나는 정말 잘 먹고 잘 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고수하는 살림 방식에 감탄하면서 옆에서 하나씩 하나씩 마음에 새겼다. 나도 이런이런 모습을 닮아야겠다고. 막상 설거지통이 깨끗하게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인식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실천해 보려 한다. 엄마 품에서 쉴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런 품이 되어주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