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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Aug 04. 2022

여름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방법

마케터의 텃밭 일지



우리의 리틀 포레스트 - 봄, 여름



연초 텃밭을 신청할 때, 가을 개장 전에 밭을 한 번 뒤엎는 걸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원래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면 굳이 고생할 필요가 없이 농장에서 해주는 게 간편할 거라 생각하고 덜컥 신청을 했더랬다. 지금에 와서야 날이 더워져서 당연히 텃밭에도 방학이 필요하단 생각은 들지만, 한편으론 내 키만큼 훌쩍 커버린 방울토마토와 가지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아쉬움도 크다. 이대로 두면 여름에 조금 더 수확할 수 있을 텐데…


텃밭 방학을 앞두고 봄 개장이 임박했던 지난 4월부터의 시간을 쭉 훑어봤다. 야근이 많아 지쳐있는 신랑에게 “다음 주부터 텃밭이야…”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당시 신랑은 꼭 해야겠냐며… 주저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밑져야 본전이니 두어 번만 나가보자고 신랑을 설득했다.


첫 개장날, 감사하게도 시부모님이 텃밭 일구는 과정을 리드해주셨고 우리 가족은 쌀쌀한 봄바람과 푸르른 대자연을 누리며 좋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신랑 역시 노동 후 새참 김밥을 맛있게 먹으며 이렇게 나오니까 완전 봄소풍이다고 신나 했다. 심지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주 나올 수 있을 거 같다고.


시간이 흐르고 날이 점점 더워져서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텃밭에서 일하는 동안 나름 선선한 기운으로 덜 고생한다는 걸 깨달았다. 일찌감치 밭일을 하고 돌아가는 부지런한 어른들을 보면서 세상 참 대단한 사람 많구나 숙연해지기도 하고, 다른 텃밭에 비해 우리의 텃밭이 나름 잡초가 덜한 걸 보면서 뿌듯함도 챙겼다.


매주 두세 봉지 크게 상추 종류의 잎채소를 따고, 아욱으로 국거리도, 고추, 양배추, 가치 등의 열매채소까지 다양하게 수확했다. 텃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고기 장을 봐와서 푸짐한 상으로 식사를 하는 미까지 더해졌다.


무엇보다 신선한 채소(농약 없이)를 수확해 그게 고스란히 우리의 몸에 전달되는 과정은 정말 경이롭다. 내 안에 자연의 생기가 흐르는 것은, 어떤 영양제보다도 가장 강력한 효과라는 것을 우리는 몸으로 배웠다.


여름방학 전 마지막 텃밭을 찾았다. 아이들은 곧 뽑힐 채소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 했다. 괜히 뭉클한 인사를 나눈 뒤, 근처 베이커리에서 파는 팥빙수를 먹으며 그간 소회를 나눴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적적한 주말 일거리가 생겨서, 게다가 건강한 농작물을 수확해 먹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하셨다. 남편은 아무래도 내년은 2 구획을 신청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왕 텃밭으로 오는 거 더 다양한 작물을 심어서 열매채소들을 많이 수확하자는 야심을 비추기까지 했다. 매주 고사리손으로 직접 기르고 딴 야채들을 맛보는 아이들은 텃밭이 새로운 놀이터가 되어있었다. 일곱 살 난 아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계기가 되어준 텃밭. 의젓하게 수확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도움이 되는 제법 한몫을 해낸다.


그럼에도 땡볕의 무더위는 우리를 자주 지치게 했다. 에어컨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10분 거리 어린이집도 차로 데려다 달라고 아침마다 떼를 쓴다. 하원에서도 차를 갖고 오지 않은 엄마에게 투정부터 부리곤 한다. 몸에 땀이 나는 게 세상 싫기 때문이다. 그러니 텃밭에서의 여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아이들에게 나 역시 땀나는 게 싫지만… 이렇게 이야기해줬다.


“이게 여름이야. 네 몸이 여름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할 거야!”


땀이 나면 나는 데로, 날씨에 반응하는 몸을 관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2022년 여름이 어땠는지 기억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니까.



우리의 봄, 여름 리틀 포레스트 빠이-

선선해지는 가을에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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