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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May 24. 2022

완벽주의 급한 성격 다잡기 딱 좋은 이것

텃밭 일구는 마케터



#2. 급한 성격을 다스리는 자연의 순리


미리 계획한 대로 겨우내 굳은 땅을 잘게 부수고, 준비한 대로 땅의 모양을 잡아, 파종을 시작할 것이다. 농장 본부에서 빌려온 삽과 곡괭이, 호미, 그리고 아이들도 할 수 있도록 모종삽까지 챙겨 들고 텃밭 가장자리에 빙- 둘러 자리를 잡았다. 힘센 어른 남자들이 삽으로 깊이 흙을 파 뒤엎으면, 그 뒤로 어른 여자들이 괭이로 투덕투덕 흙을 부수고, 아이들은 모종삽으로 굵은 흙덩이를 잘게 쪼개기로 했다. 생각보다 단단하게 덩어리 진 흙을 부수는 건 미처 생각지 못한 업무스콥이었다. 성격만 급한 초보텃밭러에게 고된 장벽처럼. 굵은 흙을 보슬보슬하게, 가끔 보이는 돌멩이를 골라내는 것은 아주 섬세한 작업이었다.


알아서 잘 자라는 거 아니었어?라는 막연한 생각이었지 가장 기초 작업을 하고 나니, 벌써 허리와 어깨가 뻐근하게 느껴지고 손바닥이 흙 마찰에 간지럽게 불그스름해지기 시작했다. 성급한 일 처리 방식이 통하지 않는 자연의 순리에 나는 멀리 보이는 산등선을 따라 그리며 여유를 호흡하려고 애썼다. 아직은 어떠한 모습으로 피어날지 알 수 없는 텃밭은 온통 흙으로 덮여 삭막하기만 하다. 그 안에 감춰진 잠재력은 숭고한 자연의 시간이 머지않아 선사해 줄 것이라 믿는다.


어느새 우리의 살뜰함이 통해 보슬보슬 흐트러진 흙이 만들어졌다. 이제 구획을 나눌 차례, 신기하게 사람들의 창의력은 제한적인 형태 안에서 빛을 발한다. 크게 한 덩이로, 두 덩이로, 여러 고랑을 파서 길게 빼빼로 모양으로, 가로로 켜켜이 고랑을 판 밭까지. 각양각색의 얼굴을 하는 텃밭 중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고르고 골라 우리만의 텃밭 모양을 구상했다.


크게 삼등분하여 하나는 씨앗 존, 가운데는 모종 존, 마지막은 길게 2개로 고랑을 나눠 높이 자라는 가지와 고추 존으로. 아직 씨를 뿌리기 전인데 이렇게 모양을 가꿔 놓으니 곱게 가르마를 탄 것처럼 핸썸해 보였다. 엄마야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나 봐.



#3. 이제 꿈과 희망을 가득 담아 파종


농장 본부에서 나눠주는 기본 모종을 받으러 갔다. 상추 모종과 씨앗을 받고 돌아서다가 다른 모종들을 보고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계란판처럼 생긴 작은 틀 안에 저마다의 색깔과 이파리를 뽐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딸기, 양배추, 로메인, 브로콜리 등 다양한 종 중에 그나마 잘 자랄 수 있을 거 같은 양배추와 브로콜리 모종을 세 개씩 추가로 구입했다. 더 모종을 구경하다가 텃밭 실험실이 될 거 같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 녀석들을 잘 키우는 데 집중해야지.


우리 텃밭은 처음 흙을 잘게 부수면서 씨앗 존, 모종 존을 나눠 체계적으로 구획해두었다. 먼저 씨앗 파종부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씨앗들이 어찌나 고운 빛깔 자태를 뽐내던지, 이게 열무라고? 이게 대파가 된다고? 스스로 처음 마주한 씨앗에 감격을 쏟아냈다. 씨앗 파종은 대부분 성공하기가 어려워서 하나씩 뿌리는 것보다는 여러 개씩 같이 심어주는 게 좋다. 우리는 기다랗게 얇은 홈을 길게 파서 씨앗들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흙을 파우더처럼 흩날리며 덮어주는 것으로 마무리. 이 중에 싹이 많이 올라온다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들을 한두 개씩 뽑는 일명 솎아주는 작업을 하면 된다.


다음으로 모종을 플라스틱 트레이에서 하나씩 꺼내서 심는 작업을 시작했다. 모종 별로 자라는 환경을 잘 세팅해주는 게 필요하다. 간격은 대충 손바닥 한 뼘 반 정도 20cm 이상 간격을 두고 홈을 파서 자리를 잡아본다. 노트에 미리 간격을 예상했던 것보다 한두 자리가 더 여유가 생겨서 추가로 모종을 사 오기로 했다. 우선 가족들이 하나씩 옮겨심기 시작했고 나는 아까 사고 싶었던 파프리카를 색깔별로 하나씩 장만하러 다녀왔다. 빨간 파프리카는 큰아이가 꺼내서 심고, 노란 파프리카는 나와 둘째가 심어보려고 나누었다.


한창 줄에 맞춰 심고 있는데, 우습게도 요령이 없던 나는 줄기를 당겼고, 단단한 흙더미가 같이 당겨지지 않은 바람에 뿌리가 뚝 끊어지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울상이 된 둘째에게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내 마음도 이미 금이 갔다. 혹시나 살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우선 정해진 자리에 심어뒀다. (미리 스포 하자면,,, 운명했…) 다 옮기고 나서 우리는 조리개에 물을 가득 채워 와 흠뻑 물을 주었다. 아이들은 자기의 사이즈에 맞는 조리개에 물을 뿌리면서 잘 자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제 우리의 1년, 정확히 말하면 여름까지 수확물을 위해 크게 할 일을 다 마쳤다. 잘 적응해서 잘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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