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도 입지가 중요하다고?
텃밭에서 얻는 인사이트
“텃밭 개장 당일에는 많은 사람이 몰릴 예정이니, 일정을 피해서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바쁜 일상 속 문자 하나가 잠시 잊고 있던 텃밭을 떠올리게 했다. 아 벌써 개장일이 다가오는구나. 다행히 저 한 줄의 문장에 조금은 느긋한 마음을 가져본다. 초보텃밭러를 이끌어줄 시부모님이 계시니까, 약간의 꼼수가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주말, 시댁에 들러 텃밭에 심을 작물 종류를 고르고, 배분된 땅의 모양에 따라 위치를 잡아보았다. 우리가 심으려는 작물은 가지, 고추, 깻잎, 상추, 열무. 이미 재배해 본 경험을 토대로 그나마 알아서 잘 자라는 종류로 골랐다.
생각보다 작물이 심는 간격이 넓어서 모종이 많이 들지 않을 거 같다. 조그만 공간에 파종 위치를 체크하면서도 신경 쓸게 많았다. 서로 그늘지지 않도록 길게 자라는 식물들을 배치하는 것도 조율해야 했다. 다른 작물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심을 수 있는 작물도 제한적이고, 흙의 건강을 위해서 멀칭(비닐로 덮는 것)도 하지 못한다. 새로운 규칙을 곱씹으며 자연에서 재배하는 삶에 핏을 맞춰본다.
드디어 처음으로 텃밭을 방문하는 주말, 오늘 우리의 목표는 밭을 일구고 지원받은 모종과 씨앗을 심는 것이다.
주말 아침, 멀리 외곽으로 나가야 하는 길이 막힐까 봐 7시 반부터 서두르기 시작했다. 물이 가득 든 물병, 플라스틱 컵, 장화, 모자를 담고 흙에 망칠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 갈아 신을 여벌 옷과 신발까지 담았다. 한 손에 큰 쇼퍼백을 들고 비장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아이들은 마냥 들뜬 마음으로 우리 텃밭과의 첫 만남을 기대했다. 동네 김밥집에 들러 넉넉히 김밥 6줄을 사고 내비게이션에 찍힌 농장으로 향했다.
비슷한 농장으로 내비게이션을 잘못 찍어서 엉뚱한 산길을 가긴 했지만, 막힘없이 눈부신 봄 햇살과 선선한 바람은 그런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줄 아량을 선물해줬다. 도착하니 이미 다른 텃밭을 구경 중인 시부모님을 만났다. 정말 일주일 늦었을 뿐인데, 1,000개 팀의 텃밭 중 40~50%는 이미 모종이 심어져 있었다. 세상 부지런한 사람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5평 남짓한 땅을 성실하게 돌보는 마음이 성적표처럼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1. 텃밭 배정도 운이 따라야
우리의 텃밭은 핑크빛 팻말이 꽂혀있는 기다란 직사각형 땅이다. 산을 두르고 있는 널따란 밭을 일일이 구획으로 나눠 신청 순서에 따라 배정해놓았다. 좁다란 고랑 길을 따라 서로의 밭이 빼곡히 맞물려있다. 그런데 이런 텃밭에도 좋은 입지가 있다는 사실!
텃밭 경험자인 시어머님은 우리 밭의 입지가 최고라고 평하면서 다음의 근거를 늘어놓으셨다. 먼저 중간마다 한 번 상대적으로 큰 대로가 나 있는데, 우리는 그 넓은 길을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동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또, 나무가 없는 다시 말해 그늘이 없는 텃밭에 그나마 쉼을 할 수 있는 건 원두막인데, 큰길과 연결된 가까운 쪽에 쉼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아주 중요한 요인은 바로 수돗가가 바로 앞이란 사실이다. 텃밭에 물을 주는 방식은 우아하게 호스를 이용한 방법도 있겠지만 농장에선 그런 호스 사용이 어렵다. 바로 약수터처럼 수돗가에서 조리개에 물을 가득 채워 밭에 가서 일일이 물을 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 밭은 수돗가가 바로 닿아있다.
동선이 최소화된, 육체적인 노동을 조금은 덜 수 있는 최적의 입지에 자리 잡은 우리 텃밭. 그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우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