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어린 로레인 Apr 25. 2022

텃밭 개장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자세

귀차니즘을 이겨내는 텃밭러의 마인드셋



텃밭 주인이 된 기쁨도 잠시, 바쁜 일상에 텃밭까지 한 스푼 더해질 생각을 하니 혀를 내둘렀다. 자칫 개장해도 씨도 못 뿌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집에서 차로 30분이라 텃밭에 대한 분명하고 충분한 베네핏이 우리 안에 그려질 필요가 다.


1. <정원가의 열두 달>

가드닝이란 지루하고 정적여 보이는 단어를 이보다 더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우연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찾은 차렐 카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을 읽었다. 이것은 마치 지루한 담벼락 페인트칠을 흥미로운 놀이로 탈바꿈해 온 동네 꼬마들을 줄 세워 서로 하고 싶게 만든 톰 소여의 모험 같았다.

수시로 피식거리는 통에 책이 아니라 만화책 같은 착각이 들 정도. 울고 웃기는 강연자를 만난 것처럼, 그의 유쾌한 가드닝 경험에 나는 내 마음을 마음껏 내어줬다. 이 책의 글과 그림을 맡은 두 사람은 체코 출신 형제다. 글을 맡은 동생 카렐은 25세 철학박사를 받고 여러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통찰과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을 써냈다. 그러나 시대를 잘못 타고났던 걸까? 나치 시절, 정치적으로 나치를 비판하면서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었고, 아쉽게도 이른 나이에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개인이든 국가든 언제나 봄 속에 살지는 못한다. 겨울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아야 봄을 맞을 자격이 있다. 우리도 차페크 씨처럼 작은 정원에서 큰 세상을 살아갈 원리를 배워보자. 꽃과 열매, 그들을 찾아오는 나비와 이웃 친구들은 덤이다.


​도입부 작품 안내의 한 문구 마음이 뜨거워졌다. 언제나 봄을 살지는 못하지만, 겨울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알아야 봄을 맞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그 원리를 작은 정원에서부터 배울 수 있다고 도전한다.


따듯한 4월 9일이 되기 전까지 나는 무얼 하며 기다려야 할지 막막한 고민을 저자는 통쾌히 해결해준다. 작가3월에는 오랜 전통과 경험에 비추어 2가지를 구별하라고 조언한다.

첫째, 정원가가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것. 어쩌면 정원 가는 유유자적,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자연에 머무는 것이라 착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반대로 온 힘을 다하여 열망하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둘째, 더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정원 가는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것.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정원 가는 아직도 땅이 꽁꽁 얼어 있다고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는… ㅎ


저자는 정원가란 온 힘을 다하여 열망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때론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 날씨나, 환경을 탓하기도 하지만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정원에서 할 일을 찾아간다고 말한다. 휴가를 휴가처럼 보낼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


또한 정원 속에서 그가 자연을 온전히 느끼며 통찰을 넘어 해학의 지경에 이르는 표현들에 감탄했다.


비를 은빛 입맞춤으로. 흙을 촉촉한 케이크로.


이 흙 좀 봐. 베이컨처럼 기름지면서 깃털처럼 가볍고 케이크처럼 폭신하게 갈라지면서 빛깔도 참 곱네. 너무 마르지도 질척이지도 않고. 어쩜 이리 촉촉할까?


모든 흙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미끌거리고, 축축하고, 딱딱하고, 차갑고, 척박한 흙을 그저 추하다고, 썩었다고, 구제불능이라고 치부하지 말라. 이를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라 속단하지 말라. 과연 그 존재가 인간의 영혼에 깃든 냉담함과 잔인함과 사악함만큼 추하랴.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신의 가호로 고맙게도 우리는 또다시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간다. ​



2. <텃밭의 모습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가족 여행을 떠났다. 아주 오랜만에 도심을 벗어난 탁 트인 자연을 마주하니, 그저 신났다. 정말 사람은 자연을 마주하고 살아야 해!라는 말에 격한 공감을 날렸다. 가는 길에 들린 <나인 블록>이란 카페에서 나는 워너비 텃밭을 구체화해놓은 듯한 그림을 발견했다.

각양각색 식물들로 꽉 채운 정원의 모습에 나는 내 텃밭이, 아니면 미래의 정원이 딸린 집이 이런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흐뭇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텃밭을 그릴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초보 텃밭러에게 세미프로 텃밭러 시부모님은 작물에 필요한 지식을 언제든 쏟아주실 준비가 되어있었다. 빈 노트와 펜을 들고 기다란 모양의 16.3m3 의 텃밭을 그렸다. 그리고 심고 싶은 작물과 간격에 맞춰 텃밭을 조각조각 나누었다. 생각보다 모종이 적게 심어지네? 씨앗을 심는 방법, 모종을 심는 방법, 한기에 새싹이 자라기 전에 풀이 죽지 않도록 구체적인 스케줄에 맞춰 파종을 하는 것까지. 무턱대고 텃밭을 얻었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이 덤볐다가는 낭패니까.



3. <아이에게 어떤 베네핏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에게 텃밭을 키우는 것은 신선한 채소를 얻는 그 이상의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갓 딴 채소, 모양이 성치 않아도 농약 없이 신선할 채소를 얻는 것은 편도 30분, 왕복 1시간의 고생을 통한 낙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4계절의 자연을, 손으로 심고 재배하는 과정의 정성을, 아주 놀랍고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알려주는 데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었다.


화분 하나에 물 주는 것을 찰떡같이 지키는 아이, 시골에 고구마 캐러 갈 때도 최선을 다해 깨지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에게 1년의 과정은 어떤 레슨으로 남을까? 대 자연이 아이들에게 친히 가르쳐줄 시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정도면 개장을 기다리는 텃밭러로서 준비를 마친 걸까? 마지막 문장을 쓰며, 얼마 남지 않은 텃밭 개장의 무료한 기다림이 롯데월드 개장만큼 유쾌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음을 느꼈다.



_다음 글은 4월 9일 파종한 에피소드

작가의 이전글 텃밭 주인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