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 두 살 배기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식목일 기념 방울토마토 심기 키트를 받아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집에 들인 초록 이파리들은 모두 쓰레기 봉지로 나갈 정도로 나는 식물을 다루는 방법도, 애정 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호기심 어린아이들의 눈빛에 욕실에서 쭈그려 앉아 키트에 적힌 설명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먼저 화분 밑에 그물망 하나를 깔고 잘잘한 돌멩이, 고운 흙 순으로 채워나갔다. 아주아주 작은 씨앗을 심고 분무기로 흙이 충분히 젖을 만큼 물을 주었다. 그리고 창가 난간에 두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새싹이 올라오고 키가 자라더니 꽃이 피었다. 꽃이 진 자리에는 초록색 조그만 방울토마토가 자라기 시작했다.뜨거워지는 햇살에 맞춰 점점 붉은빛을 띠며 귀여운 사이즈의 방울토마토로 변해갔다. 그해 여름, 우리는 우리 가족 수만큼 4개의 방울토마토를 수확했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재배 경험은 내 인생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당시 나는 10년 차 직장인으로 그저 망망대해에 속절없이 가라앉는 듯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번아웃된상태에서자연의 생기가 밑바닥을 친 내 몸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나날이 달라지는 식물들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의 회복 리추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좋았다.
이어서 오이, 상추, 부추, 대파, 바질 씨앗과 널따란 화분을 사다가 베란다 텃밭을 만들었다. 그중에 가장 신기한 재배 과정은 오이. 베란다에 세워진 울타리를 힘 있게 감으며 칭칭 감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굵고 넓적한 까실한 이파리 사이에 감춰진 오이를 발견한 순간 감격스러웠다. 자라는 과정은 아이에게도 꽤 생생한 자연학습이었다. 자기 손바닥보다 더 큰 오이를 보며 신기해하기도 하고, 더운 여름 목마를 까 봐 더 열심히 물을 나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환경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열매를 따야 하는데, 막상 즐거웠던 재배의 끝을 마주하려니 아쉬움이 컸다. 마지막으로 고마웠다고 인사를 해보자며 핸드폰을 켜고 아이들의 마지막 인사를 담았다. 아이들과 손수 재배한 오이 4개와 부추 한 움큼, 방울토마토, 바질 한 그릇은 큰 기쁨과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집안에 수경재배, 베란다 텃밭으로 워밍업을 한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흙을 밟으며 텃밭을 가꾸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양가 부모님들이 소소하게 가꾸는 텃밭을 어깨너머로 바라보고, 싱싱한 각종 채소들을 맛보다 보니 더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주말농장도 있고, 시에서 마련한 텃밭 대여도 제법 체계적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래서 4월부터 11월까지 시에서 대여하는 텃밭을 신청했고, 선착순에 성공하여 텃밭을 이용하게 되었다. 저렴한 렌트비를 입금하고 최종 예약 확인 문자를 받으니 드디어 내가 텃밭 주인이 된 것 같아 마음 가득 뿌듯함이 차올랐다.
앞으로 1년 간 텃밭을 운영하면서 내 삶을 어떻게 달라질까? 여러 가지가 기대되지만, 지난 경험에 비추어 3가지로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자연의 생기를 얻을 수 있다 : 일상 속 스트레스를 날리는 방법은 능동적인 체험적 휴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 다른 몰입감을 주는 활동으로 제대로 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자연에서 흙내음과 싱그러운 생기를 통해 재배과정의 수고를 들이고서라도 텃밭 경험에 푹 빠져보고 싶다.
2. 아이들과 제대로 추억을 쌓을 수 있다 : 점점 활동적인 아이들에게 자연은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가 되어준다. 꾸준히 방문하는 텃밭에서 아이들 스스로 자연학습도 하고, 환경에 대하는 아이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만의 좌충우돌 텃밭에 대한 추억이 쌓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3. 내손 내만 싱싱한 채소로 건강 식단을 : 손으로 직접 기르면서 건강한 식단에 대한 열망도 더 커진 셈이다. 특히 남편과 최근 체질검사를 통해 우리에게 정말 맞는 식재료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건강한 식재료가 주는 몸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입춘이 지났다. 봄부터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지금부터 농촌진흥청에서 만든 재배 캘린더를 보고 분석 중이다. 텃밭의 제한적 규모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초보자인 텃밭러에게 부담이 적은 작물을 잘 골라 1년 잘 재배해봐야지. 자, 이제부터 나는 텃밭(임시)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