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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망하지 않는 법부터 시작하라

by 하연민

나는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3개월 만에 '증권투자상담사' 자격증 하나를 따고 주식 브로커가 되었다. 고객에게 종목을 추천해, 주식을 사고팔며 회사에 수수료를 벌어다 주는 일이었다. 이전까지 주식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던 나는, 넓은 부스에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앉아, 어느새 주식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멋모르고 시작한 선무당 짓은 고객 여럿을 잡았다. 애널리스트가 되어 시황 분석 보고서를 쓸 때는 내 잘난 글들로 불특정 투자자들에게 꽤나 많은 피해를 주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 명의 개인투자자로서 나의 투자 성과는 낯부끄러운 수준이었고, 가족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넣기도 했다. 이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주식 투자에 대해 쓰겠다고 나섰는지 독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다.


자격 얘기가 나왔으니 말하자면, 나는 주식투자 관련한 자격증들을 제법 가지고 있다. 앞서 얘기한 주식투자상담사, 선물옵션 계좌를 관리할 수 있는 선물거래사, 펀드 운용 자격증인 투자자산운용사, 기업이나 시장분석을 하는 애널리스트 자격증인 금융투자분석사 등 업계에 필요한 자격증은 죄다 땄다. 이걸 얘기하고 시작해야 독자들이 그나마 프롤로그라도 끝까지 읽어주겠거니 싶어 궁여지책으로 꺼내는 얘기다.


증권사를 나와 일반 회사에 들어가서는 회사 자금과 오너의 사재를 운용하는 일을 했다. 내 경력에 혹해서였겠지만, 그것이 실력을 보증하는 것도 아닌데, 뭘 믿고 내게 그런 일을 맡겼는지 모르겠다. 회사 오너는 그나마 선견지명이 있어, 회사 돈은 적게 맡기고, 본인 돈은 훨씬 크게 맡겼다. 그래서 나의 투자로 회사가 재무적으로 흔들리지는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대신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오너 돈은 주식시장에 녹아내리며, 나는 의도치 않게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 회사에서는 IR(Invester Relations), 즉 투자자들과 소통하며 주가를 부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역시 썩 성공적이지는 못해 포털 종목 게시판에서 나는 매일같이 욕을 먹고 있다. 주식 투자만큼이나 주가를 올리는 일은 녹록지 않다. 우리 회사 주주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이처럼 미천한 내 투자 실력으로 인해, 이 책 어디에도 '매매 기법'이나 '성공 비결' 같은 것은 담겨 있지 않다. 그런 책은 이미 산 하나는 깎아서 만들었을 양이 대형 서점 매대에 충분히 쌓여 있다. 오히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주식을 공부해서 성공하려는 투자자들에게, 그 '공부'가 실패로 이끄는 역설적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공부 잘하는 법을 배운다고 모든 학생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한다. 공감 없는 부모의 '옳은 말'이 자칫 자식을 그르치듯, 소화되지 않은 투자 구루의 명언은 독자의 계좌를 망칠 수 있다.


열심히 일만 해서는 평범한 삶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다. 집값은 하늘을 뚫고, 은행 이자는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 투자하지 않고는 생존조차 어려운 구조다. 그러니 투자는 하고 싶든, 그렇지 않든 해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부동산은 적은 돈으로 엄두가 안 나고, 코인은 새가슴에 겁부터 난다. 그렇게 다들 '만만한' 주식 시장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주식 시장은 설렁설렁 들어올 곳이 아니다. 책 몇 권 읽고 '감 잡아보겠다'며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조금 잃는 건 수업료라며 안일하게 생각하다 보면, 빚을 지고, 파산하고, 가정이 파탄 난다. 그리고 때때로 죽는다. 과장도 비유도 아니다. 실제로 죽는다. 내 고객 몇이 그렇게 죽었고, 지인의 지인이 속절없이 죽었다. 무서운 건 그 죽음들은 주식 시장 전체의 오르고 내림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코스피 5,000포인트가 돼도 죽는 사람들은 죽는다.


주식 시장은 기업과 주주가 성장의 이익을 나누는 건전한 외피를 하고 있지만, 그 속살은 피로 얼룩져 있다. 성공의 추억담이 서점 매대에 숱하게 쌓여도 그 같은 행운을 움켜쥐는 이들은 예외적이다. 매주 수십 명의 로또 당첨자가 나온다고, 로또에 인생을 걸 수는 없다.


인생 전반에 있어서는 실수하고, 실패도 하며, 또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한 부분인 투자는 그렇지 않다. 투자 실패가 깊으면, 투자도, 인생도 다시는 못 일어선다. 그래서 독자들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성공 비법이 아니라, 망하지 않는 법이다. 망하지 않아야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성공도 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주식투자에 성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초심자의 행운일 수 있다. 혹은 불운의 신이 찾아 올 차례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주식투자에 대해서 조금 알 것 같을 때가 나락으로 가는 입구일 수 있다. 부디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먼저 망해 보고 주식 공부든, 실전 투자든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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