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원칙이지, 투자 원칙이 아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정리하는 것을 우리는 손절이라고 부른다. 더 큰 손실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방어적 행위다. 투자업계에서는 이것이 계좌를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이고, 반드시 익혀야 할 비기인 것처럼 숭배되곤 한다. 주가가 이동평균선(5일, 20일 60일 등)을 하회하거나, MACD, RSI 등 이름조차 생소한 지표가 경고 신호를 보내면, 가차 없이 손절하라는 것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기계적으로 대응하라는 원칙이다. 어떤 이들은 아예 주가가 매수가 대비 떨어지면 파는 형태의 '절대 기준'을 스스로 세우기도 한다.
겉보기엔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손절 원칙은 실전 투자에서는 오히려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주식 시장은 매일같이 각종 뉴스, 소문, 정치인의 발언 등에 따라 출렁이고, 하루에도 수차례 손절 기준선을 넘었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론대로라면 하루에도 수차례 손절과 재매수를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위험한 회전매매의 시작이다.
더 큰 문제는 손절이 투자자들에게 '가벼운 투자'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정보의 신뢰도와 무관하게 가십성 뉴스에 반응하고, "아니면 손절이지"하며 대충 들어갔다가 빠져나온다. 도박과 투자의 경계가 흐려지며, 나쁜 투자 습관이 굳어진다.
사실 손절이 정말로 필요한 이들은 따로 있다. 내가 증권사에서 주식 영업을 할 때, 손절 원칙은 중요한 영업 전략이었다.
"사장님, 이 종목 20일 이평선을 이탈했네요."
이 말 한마디면, 고객은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정리했고, 나는 수수료를 챙겼다. 이어 새로운 종목을 추천하여 또 수수료를 벌었다. 고객들에게도 널리 퍼진 이 마법 같은 손절 원칙은 보유 주식을 파는 것을 정당화하는 유용한 도구였다. 손절은 고객들에게 뼈아픈 일이지만, 증권사 직원에겐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 수익이냐, 손실이냐 보다는 매매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당시 하늘 같은 본부장님의 말씀도 여기에 박제해 둔다.
"여러분 그렇게 5%, 10% 손실 난 종목을 억지로 들고 있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것은 우리 업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고객 수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식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주식을 쥐고 안 놓으면 주식시장은 멈춰버릴 것입니다."
경제방송의 이른바 전문가들이나, 유료 리딩방 운영자들도 종목을 추천하며 늘 덧붙인다.
"손절 가격 25,000원 잡아 드립니다."
이 같은 근거 없는 손절가격은 투자자가 아닌, 오직 추천한 자신들을 위한 것이다. 하락이 커지면 자신이 제시한 손절가를 들이밀며, 면밀하게 대응하지 않은 투자자를 나무란다. 반대로 운 좋게 추천한 종목이 크게 오르면 자신이 추천한 이후로 100%가 올랐느니 하며, 신규 고객을 위한 영업에 활용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손절이 투자 원칙의 한 자리를 요구하는 것이 낯부끄러운 것은 주식보다 훨씬 큰 시장인 부동산 시장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가령 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추천해 준 집을 샀는데, 며칠 있다가 전화 와서는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고객님, 같은 평수 옆집이 5% 떨어져서 거래됐습니다. 더 떨어지기 전에 손절하시고, 나중에 시장이 안정되면 저가에 다시 사시죠."
그 중개업자는 동네에서 오래 영업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식투자는 오랜 숙고를 거쳐 종목을 선정하고, 가격의 변동성을 감안해 자금을 분산 투입하며,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첫 매수 직후 주가가 반드시 오를 거라고 믿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자신이 산 그 시점이 기가 막히게 바닥일 거라는 환상은 접는 게 좋다. 오히려 첫 진입 후 주가가 떨어진다면, 그것은 두 번째 매수를 위한 ‘기회’ 일 수 있다. 충분한 고민 없이 수익이 났다면, 그것은 거의 틀림없이 ‘초심자의 행운’이다.
물론 언젠가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팔아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그 순간은 주가의 하락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투자 근거로 삼았던 전제들이 무너졌을 때다. 그때는 팔아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손절이라 불러선 안 된다. 투자 실패의 인정이다. 그 실패는 경험과 배움이 되고, 다음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 손절은 그저 계좌를 갉아먹고 끝난다.
나는 '손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주식보다는 아이유의 노래 '삐삐'가 먼저 떠오른다.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진정 어떤 선을 넘는 지를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주식이 아니라, 사생활, 종교, 정치적 신념, 이상 등 개인의 생각과 내면의 선을 넘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들과의 관계는 언제라도 과감하게 손절해야 한다. 하지만 주식 차트에 그어진 그 어떤 선도, 혹은 자신이 마음속에 그은 주관적 선도 주식을 파는 근거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