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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당주 투자

주식투자의 기원이지, 미래가 아니다

by 하연민

주식투자를 했는데, 매년 혹은 그보다 짧은 주기로 배당을 주는 회사가 있다면 반갑다.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은행이자 수준 이상의 배당이 있다면 물렸다는 부담이 덜하고, 시간을 날려도 위로가 된다. 그래서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배당주에 끌린다. 안정적이고, 믿을 수 있는 현금흐름, 배당. 겉보기엔 그럴듯하고 매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책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는 투자 철학은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긴 시간의 흐름을 전제로 한다. 자신의 삶과 시대의 맥락을 함께 고려하며, 장기적 안목 속에서 자산을 증식하고 삶을 기획하는 관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정기적으로 현금을 배당으로 챙기는 투자 방식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 살펴보자.


무엇보다 배당은 '이중과세'라는 구조적 비효율을 안고 있다. 배당은 회사가 낸 이익에서 법인세를 납부한 후 남은 순이익에서 주주에게 일정 금액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런데 투자자는 그 배당금에 대해 또다시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이미 세금을 낸 '순결한 돈' 임에도, 투자자 계좌에 들어오는 순간 또 한 번 과세되는 셈이다. 기업과 장기적 동반자 관계를 전제한 투자라면, 이는 결코 합리적이라 보기 어렵다.


당신이 한 기업을 창업하고, 오랜 시간 애써 수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고 가정하자. 아마도 지속적인 성장을 갈망하는 사업가라면, 그 수익의 상당부분을 다시 설비투자나 R&D에 투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지 당장 돈이 생겼다는 이유로, 그것을 굳이 세금까지 내가며 개인 계좌로 옮길 이유는 없다. 현금이 회사 안에 머무르는 것이 자본 효율을 높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배당은 많은 경우, 배당락이라는 주가 조정 현상을 동반한다. 배당받을 권리를 확정한 바로 다음 날인 배당락일에 주가는 배당금만큼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기계적인 하락은 아니지만, 시장 심리가 이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주가의 3%에 해당하는 배당을 받은 다음날 주가가 3% 빠졌다면, 우리는 무엇을 얻은 것일까? 배당이 과연 진정한 주주친화 정책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배당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자본수익, 즉 시세차익이 있다. 주가가 상승함으로써 생기는 수익이다. 대부분의 성공적인 투자, 특히 극적인 수익은 이 자본수익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주식투자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배당주에서는 이러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가는 꿈을 먹고 크기에 아직은 미약해 보여도, 큰 포부를 가진 주식은 미래를 선취한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하지만 명확한 잣대로 측정 가능한 주식은 일정 범위의 주가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배당주들이 그렇다. 시장은 배당 수익률로 배당주를 평가한다. 배당이 안정적인 만큼 주가도 안정적이다. 즉, 주가가 박스권에 갇힐 가능성이 커진다. 10,000원짜리 주식이 500원 배당을 주면 5% 배당수익률이다. 그런데 주가가 15,000원이 되면 동일한 배당금에 3.3% 수익률이 된다. 그러면 기존 배당 투자자들은 이 주식을 팔고 떠나게 되고, 신규 배당 투자자가 들어오기엔 매력도가 떨어진다. 결국 다시 주가는 적정 배당률을 향해 하락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주식의 기원은 배당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주식은 바다에서 태어났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항해의 위험을 분산하고 자금을 모으기 위해 일반 시민에게 주식을 발행했다. 항해가 성공하면 배당을 통해 이익을 나눴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주식시장이 있고,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을 갖췄다. 굳이 회사가 돈을 꺼내 투자자에게 나눠줄 필요가 없다. 그 돈은 기업 안에 유보되어, 더 높은 수익률을 노릴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되는 게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사실 배당은 개인투자자보다는 대주주 오너에게 더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분 30%를 가진 대표이사가 있다고 하자. 그가 사업을 하다 유망한 사업 아이템을 발견했다면, 굳이 기존 회사의 잉여현금으로 그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을까? 배당을 실시해 확보한 돈으로 자신이 100% 지분을 가진 회사를 세워 그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소액주주 70%에게 굳이 제 통찰력의 과실을 나눌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배당은 극단적으로 회사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배당은 단기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성장을 제약하고 자본의 효율성을 낮추며, 오히려 주가 상승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배당금은 달콤하지만, 그것은 기업의 피 같은 유보이익을 쪼개는 일이기도 하다. 스스로 성장하고 싶은 기업에게 매년 일정 금액을 주주에게 송금하라는 요구는, 회사의 발목을 잡는 일일 수 있다.


자신이 투자한 주식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끝에 성숙 단계에서 배당을 시작한다면 그 배당은 오히려 보너스에 가깝다. 아마도 그때의 배당금은 자신이 최초로 투자한 원금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배당을 기대하며 들어간 결과가 아니다. 성장의 결실이 배당이라는 형태로 흘러나올 뿐이다. 그때의 배당주 투자는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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