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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루저 Oct 17. 2019

리어카와 바이크는 어디에 세워야 할까요

할머니의 리어카, 내 바이크

리어카와 바이크는 어디 세워야 하나요

0.

나는 마포구와 용산구 사이에 있는 언덕에 산다. 조그맣고 오래된 주택이 오밀조밀 모인 이 동네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작은 기사식당과 허름한 슈퍼가 많고,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다. 최근에는 점점 허름한 슈퍼들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오고 있으며, 오래된 건물들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예쁜 건물이 차례로 들어서고 있다.


집 바로 근처에는 노인전문요양원도 있다. 그래서 집을 오가며 꽤나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동네가 워낙 높은 언덕인지라 날이 조금만 더우면 많은 어르신들이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고 계시거나 그늘에서 지친 듯 쉬고 계실 때가 많다.


이 글은 작년 더울 때 만났던, 특별할 것 없었던 한 할머니의 리어카에 대한 얘기다.

 

(C) unsplash



1.

외출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나는 평소처럼 집 근처의 (폐업한 지 얼마 안 된) 상가의 구석자리에 바이크를 세워두러 갔는데, 늘 내가 바이크를 세워놓는 자리에 텅 빈 리어카가 한 대 서있었다. 둘러보니, 그늘이 진 상가 계단에 리어카 주인처럼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앉아서 쉬고 계셨다. 검은 봉다리에 싸온 귤을 드시면서.


할머니는 나를 보자 미안한 기색으로 지금 바로 리어카를 빼준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여기가 어차피 정해진 내 자리도 아니고, 아무 데나 세워도 괜찮다며 조금 떨어진 옆 자리에다가 바이크를 주차했다.


그리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자신의 귤 하나를 건네며 친근하게 말을 건네셨다. 폐업한 그 자리의 상가 주인이 할머니를 위해서 늘 박스를 모아뒀다가 2주마다 건네주었는데, 최근 할머니가 잠시 쉬었던 몇 주 사이에 말없이 이 가게가 폐업해 속상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얘기는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얘기로 흘러갔고, 할머니는 대뜸 폐지의 가격이 너무 낮아졌다는 하소연을 하셨다. 예전에는 1킬로에 400원이었는데, 그게 200원으로 떨어지고 100원으로 떨어지더니, 이제는 겨우 50원이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오늘도 한 움큼'이나 모아가셨는데, '겨우 천백 원' 받으셨단다.


휴. 말이야 '한 움큼'이지, 할머니의 말씀대로 킬로당 50원이었다면 비어 있는 할머니의 리어카에는 거의 20킬로가 넘는 버려진 박스와 종이 쪼가리들이 들어있었던 게다. 할머니는 그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이 언덕을 내려가서 돈으로 바꾸신 뒤, 다시 리어카를 끌고 이 언덕을 올라와 적당해 보이는 자리에 리어카를 두고 쉬고 계신 거였다.


(C) unsplash



2.

할머니와 나는 그 이후로 만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약속한 듯이 주차 공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 날을 계기로 늘 원래의 내 차지(?)였던 자리에 리어카를 세워두셨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그 옆자리에 바이크를 주차했다. 나는 바이크를 탈 때마다 리어카가 주차되어 있거나 자리에 없는 것을 통해 할머니의 안부를 짐작했다. 리어카가 없으면 '할머니가 지금도 어디선가는 킬로당 50원밖에 안 하는 폐지들을 줍고 다니시는구나, ' 생각하기도 하고, 며칠 동안 리어카가 꿈쩍도 않고 서있으면 괜스레 이상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몇 개월간 우리는 같은 공간을 리어카와 바이크로 공유하면서 지냈다.


(C) unsplash



3

이때까지의 글은 내가 작년 늦여름에 할머니와 만난 몇 달 뒤에 써놓았던 글인데, 일 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이 글을 덧붙인다.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에 떠밀려 많은 리어카들이 우리 동네의 풍경에서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그늘 삼아 앉아 계셨던 그때의 허름한 상가엔 이제 통유리에 예쁜 조명이 달린 이름 모를 공간이 생겼고, 허름했던 동네의 식당은 유명 TV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맛집이 되었다. 이제 할머니를 위해서 폐지를 모아주던 상가 주인들은 없어졌고, 낯선 얼굴의 사람들이 상가에 들어서게 되었다. 내가 동네에서 가장 좋아했던 예쁜 건축사무소는 빨간 간판의 부동산으로 바뀌었고, 그 옆의 식물원도 폐업한 뒤 역시나 핑크빛 간판의 부동산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C) unsplash



4.

그리고 처음 할머니를 뵌 지 일 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나는 할머니도, 할머니의 리어카도 못 본 지 오래되었다.

주변에 새로운 상가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기존의 주민들이 동네 도로변에 늘 세워놨던 많은 오토바이, 자전거, 리어카에 대한 새로운 상가 건물주들의 신고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내 바이크에도 새로 입주한 상가의 민원신고로 구청의 경고 딱지가 붙어있었고, 마찬가지로 그 옆에 할머니의 리어카에도 그 냉정한 딱지가 차갑게 붙어있었다. 여기는 주민들이 지나다니는 곳이고 바이크나 리어카의 주차장으로는 쓰일 수 없으니, 지정된 곳에 주차하지 않고 계속 세우면 강제로 철거하겠다는 딱지다.


여기서 말하는 불편함을 느끼는 '주민'들이란 누구고, 또 '지정된 곳'은 어디일까. 몇십 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리어카를 둘 수 있는 적당한 자리는 어디고, 또 합법적으로 바이크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을 어디일까. 여유 있는 주차장이라고는 있기 어려운 언덕배기 동네에서, 생활의 한 부분이 된 리어카와 바이크의 자리는 어디가 되어야 할까.


(C) unsplash



5.

나는 결국 내 바이크를 빼서 다른 곳에 놔두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똑같은 경고 딱지를 받았고, 이런 일이 반복되어 이곳저곳 옮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근처 빌라의 건물주에게 주차비를 지불하고 빌라 지하주차장의 창고로 쓰이는 구석 공간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빌라 건물주는 나를 마주칠 때마다 어디를 가냐, 몇 살이냐, 바이크는 얼마냐 등등을 묻기 시작했고, 그 질문은 늘 다음번 주차비도 잊지 말고 입금해달라는 당부로 이어졌다.


그 불편한 질문과 억척스러운 당부가 듣기 싫어진 나는 집 근처 공공주차장과 주차타워에 등록을 문의했지만, 모든 시설이 다 바이크는 주차가 허락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구청에 전화해서 문의해봤지만, 같은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모든 공공 주차시설은 기본적으로 이륜차를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이륜차의 범주에는 당연하게도 리어카가 포함되어 있었다.


(C) unsplash


6.

나는 별 수 없이 계속 옆 빌라의 지하 구석에 주차를 하고 있는데, 오늘도 역시 각종 질문과 재촉을 퍼붓는 건물주를 상대하며 빌라를 나서는데 문득 할머니와 리어카가 떠올랐다. 나랑 오랜 기간 같은 공간에 주차하고, 같은 시기에 쫓겨난 할머니의 리어카는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나처럼 이리저리 옮기며 여러 번의 딱지를 더 떼인 후, 적당한 장소를 찾으셨을까. 할머니도 어디선가 땅 소유주의 눈치를 보면서 주차를 하고 계실까. 할머니는 이 동네에는 애초에 원칙적으로 리어카와 바이크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는 것을 아실까. 혹은 이제는 폐지 가격이 50원보다 더 떨어져서 더 이상 주우러 다니지 않으실까.


(C) unsplash


7.

오늘 출퇴근 길에 집 근처를 유심히 둘러보니, 예전엔 종종 보였던 리어카들이 동네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 동네의 도로는 민원을 넣은 누군가의 바람대로 무척이나 깔끔해졌다. 더 이상 리어카도, 리어카를 주차해놓고 쉬는 할머니도, 바이크도 길가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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