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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루저 Sep 18. 2021

아부지와 함께 바이크 여행 1-1

서른과 환갑을 앞둔 아들과 아부지

아부지랑 같이 바이크 여행을 가야겠다,라고 결심했던 건 스물여덟 살이 끝나가는 겨울이었다.


그즈음의 나는, 내가 곧 서른이 된다는 것보다 아부지가 곧 환갑이 되신다는 것의 의미를 더 자주 생각하곤 했다. 내가 2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낼 때, 아버지는 환갑을 맞으실 터였다. 나는 '환갑'이라는 단어로 아버지의 나이를 떠올리기 전까지는 한 번도 아부지의 '늙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여전히 바쁘게 일하고, 집안에서의 가부장적인 모습도 그대로며, 술 담배 모두 줄일 생각이 없으신 아부지. 그래서 평소 마주치는 어떤 모습에서도 아부지가 '늙음'을 체감하긴 어려웠는데, 아부지는 그렇게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훌쩍 환갑을 앞두고 계셨다.


환갑을 앞두시고도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으셨던 아부지는 내 기억 속 젊은 시절부터 늘 바쁘셨는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려고 애쓰셨던 분이었다. 집 한편에 책을 잔뜩 모으셨고(특히 각종 사진집이 기억에 남는다), 카메라를 좋아하셨고(내가 어렸을 땐 안방의 화장실을 사진 현상을 위한 암실로 쓰셔서 어무니의 분노를 자주 유발하셨다), 시계랑 옷에 관심이 많으셨고(내가 가진 대부분의 시계는 아부지에게 선물 받은 시계다), 클래식바이크를 좋아하셨다(bmw부터 모토구찌까지). 아부지가 워라벨이라던가 취향 같은 가치들을 얼마나 의식하고 계셨을지는 모르겠지만, 90-00년대의 한국사회에서 평범한 월급쟁이 가장 아저씨가 결혼 뒤 뒤늦게 생긴 이런 취미들을 꾸준히 지키는 데는 많은 애틋함과 애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부지랑 아부지의 바이크. 저 가죽장갑은 써보고 좋으셨는 지 나에게도 같은 걸로 선물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아부지가 이렇게 애써서 간직하셨던 것들을 쉽게 물려받았다. 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고, 클래식바이크는 늘 내 재산 1호이며, 필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라던가 오래된 수동 시계의 태엽을 감는 순간을 좋아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부지가 지금의 내 나이 때에는 동경으로나 갖고 있었을 취미들을 나는 자연스럽게 접하고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거였다. 아부지가 (그리고 사회가) 마련해준 자연스러운 문화와 만들어 놓은 여유가 많은 덕분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하게 된다. 아마 아부지가 30년 정도만 늦게 태어나셨더라면, 그래서 성장을 과제로 삼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에게 강요되는 압박이 조금만 덜했다면, 지금의 내 모습과 비슷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포토그래퍼가, 그게 아니면 바이크를 타고 사진을 찍으며 다니는 여행작가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처럼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반대로 내가 3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동경 속에 미뤄두고 20-30대를 정신없이 어떤 책임감에 휩싸여 보내고 있진 않았을까.


이런 생각 끝에 아부지랑 모터사이클 여행을 결심했다. 얼마 남지 않은 내 20대가 아쉬워서가 아니라, 아부지와 함께 바이크를 즐기며 공유할 날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늘 그래 왔듯이) 마음 놓고 잔뜩 좋아할 시간이 충분하지만, 아부지에게는 (늘 그래 왔듯이) 오롯하게 즐길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상하게도 따듯했던 그 해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모터사이클 여행을 같이 가게 되었다. 

 

태국에서 사 온 할리 데이비슨 티를 입고 사진 찍으시는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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