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루저 Mar 08. 2023

10만키로. 올드바이크 정비. 센터 사장님과의 관계.

올드바이크와 라이프스타일

0. 

아끼는 바이크가 10만키로가 되었다. 20대 초중반에 전재산을 털어 바이크를 샀고, 그 뒤로는 바이크 구매 비용보다 더 많은 수리비를 냈다. 그리고 최근 10만키로에 맞춰서 다시 점검과 가벼운 정비를 받고왔다. 


99999만키로 - 10만키로 사진


1. 

이 바이크(cb400ss)는 그간 여러 바이크샵에서 냉대를 받았다. 오래된 바이크이기 때문이다.

최신 바이크 대부분이 컴퓨터에 연결해 스캔으로 고장난 곳을 확인하고 교체하는 정도로 정비가 이뤄지기 때문에, 오래된 바이크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필요한 정비를 하는 건 센터 입장에서 어렵거나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한 10년 사이에 오래된 바이크를 정비해주는 센터가 확연히 줄어들어 튜브 교체나 휠 정렬 같은 기본적인 정비도 받기가 쉽지 않아졌고, 정비에 들이는 품과 시간에 비해서 정비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많은 센터를 다니며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바이크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것을 숱하게 경험했고, 그런 경험들이 센터나 소비자나 모두 쌓이다 보니 센터에서는 부담스럽게 입고를 받지 않게 되며 소비자로서는 믿을 만한 센터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2.

올드바이크 정비를 잘 보는 샵을 발견하면 농담삼아 라이더들끼리 명절때마다 보약을 지어드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곤 하는데, 실제 몇년 간 정비를 맡기고 있는 센터 사장님과는 단순히 손님-사장님의 관계가 아닌 사이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센터 입장에서 올드바이크를 꾸준이 입고받고 정비를 해준다는 건 여러모로 효율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애정과 일종의 집착이 사장님에게도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올드바이크 대부분이 국내에 몇대 없는 기종이다 보니 부품 조회를 하더라도 (대체로 일본어나 영어로 된)원서 매뉴얼을 구해서 찾아봐야하고, 정확하게 찾는다 하더라도 생산이 단종되거나 국내에서는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각 나라의 중고거래 사이트를 몇달간 뒤지며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그렇게 몇달을 발품 팔아도 구하지 못할때는 다른 기종의 부품을 가공할 방법을 찾아보던가 직접 관련 공장이나 업체를 찾아 제작을 해야만 하는 상황(심지어 부품을 제작하기 위한 기계까지 제작해야하는 일 마저)도 생긴다.  


이 고생스러운 과정을 함께 해줄 센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올드 바이크를 꾸준히 봐준 센터 사장님과는 손님-사장님의 관계보다는 애증을 주고받는 주치의-환자의 관계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3. 

cb400ss 10만키로 점검을 마치고 받아오는 길에 다른 두대의 바이크도 미뤄놨던 정비를 맡겼는데, 사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해당 바이크를 둘러싼 기억과 스토리들을 신나게 말씀하셨다. 나 또한 몇년 간 정비했던 내역과 알아본 부품/나사크기/도색방법을 공유하고 잘부탁드린다는 얘기로 즐거운 대화를 마치며 헤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올드바이크는 타는 사람이나, 고치는 사람이나 애정을 가진 일에 대한 집념이 있어야만 일상에서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드바이크가 외형적인 형태에서 비롯되는 취향을 떠나서(물론 올드바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클래식한 미감과 기계식 작동 방식을 좋아하긴 할테지만)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강력하게 드러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상에서 올드바이크/올드카를 타고 다니는 사람 보게되면, 바이크와 차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라이더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나랑 비슷한 정비 과정이나 시행착오를 나름대로 거쳤을 테고, 그 지난하고 비용이 높은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할테니까 말이다. 



4.

최근 들어서는 정말 오랫동안 함께 올드바이크를 좋아해왔던 주변의 여러 사람들도 점점 올드바이크를 떠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만큼 편한 것과 멀어지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아마 바이크 뿐만 아니라 사회 대부분의 영역도 비슷할것 같기도. 


매거진의 이전글 아부지와 함께 바이크 여행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